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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지하철보다 두 배 빠른 자전거? 코펜하겐에선 가능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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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로 29분인데 자전거로는 11분?’
지난달 21일 오전, 덴마크 에너지청과의 인터뷰를 앞두고 지도 애플리케이션(앱)으로 길을 찾아보다 깜짝 놀랐습니다. 코펜하겐의 숙소에서 지하철을 타고 에너지청까지 가는 것보다, 자전거로 가는 게 훨씬 빨랐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자동차로 이동하는 시간(8분)과도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코펜하겐의 대중교통이 부족한 건 아니냐고요? 그렇진 않습니다. 코펜하겐도 세계적인 도시인 만큼 지하철을 비롯해 버스, 기차 등 여러 교통시스템을 잘 갖췄거든요.
그럼에도 자전거가 더 빠른 이유는 ‘자전거 고속도로’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고속도로는 코펜하겐이라는 도시가 탄소배출량을 감축하는 핵심 정책이기도 합니다.
지난달 코펜하겐에 머무르면서 자전거를 타는 시민들을 정말 많이 봤습니다. 출퇴근하는 직장인은 물론, 자전거 앞뒤에 아이들을 태우고 가거나 장을 본 뒤 짐을 싣고 가는 사람들도 많았죠. 청년은 물론, 머리가 희끗한 노인부터 아이들까지 남녀노소 누구나 자전거를 타고 있었죠.
코펜하겐 시민들이 자전거를 일상적인 교통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는 건 자전거 도로가 워낙 잘돼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자전거도로가 차도와 인도에서 완벽하게 분리돼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자전거를 타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인도로 올라가야 할 때가 많잖아요. 코펜하겐에서 자전거를 탈 때 그런 일이 전혀 없었죠.
자전거를 위한 신호등도 따로 있습니다. 덕분에 자동차랑 충돌할 위험이 적습니다. 예를 들어 자전거와 자동차 모두 좌회전을 기다리고 있는 경우, 자전거 신호에 먼저 초록불이 들어와서 자전거 이용자들이 안심하고 먼저 지나갈 수 있죠. 그 외에도 신호를 기다릴 때 발을 올려둘 수 있는 지지대 등 자전거 편의시설도 많습니다. 수신호도 발달돼 있고요.
사실 이 정도 자전거 시스템은 다른 유럽 도시에도 있습니다. 하지만 덴마크는 한발 더 나아가 자전거 고속도로를 만들었습니다. 말 그대로 신호등 없이 쭉 달릴 수 있는 전용 도로 말이죠.
자전거 고속도로 자체는 2011년 영국 런던에 먼저 생겼지만, 그 시스템이 가장 잘 발달한 건 덴마크일 겁니다. 코펜하겐 시내는 물론 그 주변 소도시들까지 이어지는 광역 도로이기 때문이죠. 현재는 20개 소도시를 지나는 12개의 경로가 완성됐는데 길이는 총 200㎞가 넘습니다.
2045년까지 850㎞가 넘는 60개의 경로를 만들어 호브스데든(Hovedstaden) 지역, 우리말로 하면 수도권 지역에 있는 31개 소도시를 연결할 계획이고요. 이렇게 되면 2,000㎡에 달하는 지역에 자전거 고속도로가 생기는 건데요. 이는 서울(605.2㎡) 및 인접한 경기도 10개 시를 합한 면적과 비슷합니다.
자전거 고속도로를 만든다는 아이디어는 2008년 코펜하겐에서 시작됐습니다. 당시 시 정부는 환경을 위해 통근하는 사람 중 절반 이상이 자전거를 타도록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죠.
그런데 도로를 짓기 위해 조사를 해보니 코펜하겐의 통근자 상당수가 코펜하겐 바깥 도시에서 출퇴근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수도권 시민들이 서울에 있는 직장을 오가는 것처럼요.
결국 주변 도시들이 참여해야 자전거 이용자 수를 늘릴 수 있었던 거죠. 코펜하겐시의 설득으로 15개 지자체가 모였고 고속도로 건설 과정을 총괄하는 기관인 슈퍼쉬겔스티어(Supercykelstier)가 생겼습니다. 2012년 코펜하겐 중심을 가로지르는 첫 고속도로가 완공됐고 지금까지 꾸준히 확장돼왔죠.
2019년 기준 평일 하루에 자전거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각 경로당 평균 2만9,000명이었습니다. 경로가 10개가 넘으니 중복 이용자를 감안하더라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로 출퇴근한 거죠. 이용자들이 자전거 운전 1회당 달린 거리는 평균 11㎞라고 하네요.
은행원인 미이(42)씨와 남편도 자전거로 출퇴근합니다. 베어로스(Værløse)라는 마을에 있는 미이씨의 집은 코펜하겐에 있는 사무실과 22㎞ 떨어져 있다고 해요. 자전거를 타고 가면 50분 정도 걸리는데요. 코펜하겐 시내에 진입하기 전인 초반 15㎞ 정도는 자전거 고속도로만 이용하기 때문에 쌩쌩 달릴 수 있다고 하네요.
미이씨는 자전거 출퇴근이 지구를 살리기 위한 실천이라고 생각한대요. 하지만 세 아이의 엄마로서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이유도 있죠. “결혼 전에는 운동도 많이 했지만 워킹맘이 된 이후로는 바빠서 그러지 못했어요. 하지만 자전거로 출퇴근하면서 건강도 챙기고 머릿속도 비우는 나만의 시간을 갖는 거죠.” 미이씨처럼 출퇴근과 운동을 함께 해결하기 위해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많다고 합니다.
사실 매일같이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는 게 누군가에게는 부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전거 고속도로는 대중교통과의 연결도 잘돼 있어요.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좀 힘들다거나, 장거리 이동을 해야 할 때 바로 자전거를 들고 타면 되는 거죠. 코펜하겐과 인근 소도시를 잇는 광역 기차들에도 자전거와 유모차, 휠체어 등을 위한 칸이 널찍하게 마련돼 있습니다.
이처럼 자전거 이용자들의 편의를 위한 여러 시스템이 생긴 덕분에 시민들도 더욱 더 자전거를 선택하고 있습니다. 2019년 자전거 고속도로 이용자는 전년 대비 23% 늘었는데요. 새로운 자전거 이용자 중 약 14%는 자동차로 출퇴근을 하던 사람이라고 해요. 흔히들 덴마크 사람들이 자전거를 좋아하니까 많이 타는 거라 생각하지만, 편하지 않았다면 시민들도 선택하지 않았을 거라는 거죠.
슈퍼쉬겔스티어의 시셀 비에크 율러 사무국장은 “70년대에 찍은 코펜하겐의 사진을 보면 자동차로 가득 차 있어요. 자전거 친화적인 지금의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죠. 오랜 시간에 걸쳐서 자전거 도로를 확보하고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는 여러 장치를 만든 덕에 이렇게 진화하게 됐습니다.”
슈퍼쉬겔스티어에 따르면 자동차로 11㎞를 달리면 3.0㎏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되지만 자전거를 이용하면 0.2㎏로 줄어듭니다. 대중교통의 탄소배출량(1.1㎏)과 비교해도 압도적으로 낮죠. 때문에 슈퍼쉬겔스티어는 자전거 출퇴근 인구가 기존보다 1%만 늘어도 1만6,500톤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고 추정합니다. 30년생 소나무 250만 그루를 심는 효과입니다.
기자는 출장을 마치며 서울에서도 최대한 자전거를 이용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직 자전거 도로가 없는 곳이 많지만 그래도 노력해 보기로 했죠. 하지만 지하철에 붙은 '평일 10~16시에만 자전거를 이용하라'는 지하철 안내문을 보고 현실의 벽을 느꼈습니다.
꼭 자전거 고속도로만이 정답은 아닐 겁니다. 덴마크와 우리나라는 지형도 인구구조도 다르니까요. 하지만 자전거 이용을 위한 인프라가 조금만 더 갖춰진다면, 우리 시민들의 친환경 교통수단 선택 폭도 더 넓어지지 않을까요?
※이 기사는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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