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영상] 영국은 벌써 탄소 절반을 줄였다? 비법이 궁금한 사람 모여라!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도시 쓰레기와 층층이 겹친 화물선 사이로 매캐한 연기가 가득 흐른다.”
기자가 ‘영국’을 생각할 때 떠올리는 풍경 중 하나입니다. 화석연료를 필두로 한 산업혁명이 한창이던 19세기, 영국 런던을 설명한 찰스 디킨스의 문장인데요. 산업혁명의 발상지인 영국은 1995년까지만 해도 국가 전력의 46.5%를 석탄 화력발전소에서 생산했습니다. 1990년에는 9,280만 톤의 석탄을 사용했고, 탄소배출량이 8억600만 톤까지 오르기도 했습니다.
화석연료는 전 세계로 퍼져 나갔고, 이제 우리는 역사상 그 누구도 겪은 적 없는 기후 재앙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거나 말거나, 과학자들은 인류 운명이 길어야 18년 안에 결정된다고 말합니다. 2040년 전에 지구 평균 기온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보다 섭씨 1.5도 이내로 유지하지 못하면, 우리는 극한의 폭염과 혹한, 가뭄과 홍수를 매년 겪어야 합니다.
그런데, 화석연료의 본고장인 영국이 탄소배출량을 크게 줄이고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영국은 2020년의 탄소배출량을 1990년보다 49.7% 적게 배출했습니다. 4억550만 톤입니다. 같은 해 한국의 배출량(잠정치)은 6억4,869만 톤입니다. 2018년(7억2,769만 톤)까지는 꾸준히 배출량이 늘었고, 2020년에야 코로나19 영향으로 10.9% 정도 줄었습니다.
영국은 인구가 많고 경제 규모도 큰 국가입니다. 2020년에 인구 6,700만 명, 국내총생산(GDP) 2.7조 달러(3,540조 원)였죠. 탄소감축 ‘우등생’인 덴마크의 인구가 600만 명, GDP가 3,550억 달러인데 한국과는 규모가 다릅니다. 인구 5,178만 명, GDP 1조6,000달러(2,000조 원)인 한국은 영국과 더 유사합니다.
그러니 이런 의문이 듭니다. ‘덴마크는 그렇다 쳐도 영국… 너만큼은 우리랑 비슷할 줄 알았는데… 네가 어떻게? 어느새?’
혹 통계적인 착시가 있는 건 아닐까요. 어떤 꼼수가 숨어 있지는 않을까요. 한국일보 기후대응팀(네, 한국일보에는 기후팀이 있습니다)은 8개월째 ‘그린워싱 탐정’이라는 기획 기사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국내의 각양각색 그린워싱을 파헤치다 보니, 영국에도 뭔가 석연찮은 속임수가 있지 않을지 의심이 들었습니다.
기자의 의심에 국내 여러 환경단체가 “유럽의 기후위기 대응 분위기는 한국과 매우 다르다”고 설명했고, 이를 입증할 여러 정책ㆍ통계 자료들이 있긴 합니다. 그러나 백문이 불여일견. 직접 겪어보기 전까지는 믿기가 어렵죠.
기후팀 기자는 7월 한 달간 영국을 방문해 영국의 탄소중립 현황을 들여다봤습니다. 만일 유럽, 그리고 영국이 정말 기후위기를 심각하게 여기고 있다면, 이 위기감을 독자들과도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잘되고 있다면 비결이 무엇인지, 국내 사정과 다른 점은 무엇인지 보고 싶었습니다.
이 여정의 첫 번째 이야기는 런던 남서부에 위치한 작은 주택 단지에서 시작됩니다. 런던 중심부에서 대중교통으로 1시간 정도 떨어진 친환경 주택 단지 ‘베드제드(BedZED)’입니다. 기자는 주택 공유 애플리케이션(앱) '에어비앤비'를 통해 지난달 24일부터 28일까지 5일간 이곳에 머물렀습니다.
에어비앤비는 사람들이 자신의 집을 여행자에게 돈을 받고 숙소로 내어주는 플랫폼이죠. 이곳에 사는 마리앤 라즈무센씨가 자신의 집을 기자에게 숙소로 제공해줬습니다.
‘베드제드.’ 베딩턴 제로(0) 에너지 개발(The Beddington Zero Energy Development)의 약자를 딴 주택 단지입니다. 무려 20년 전에 ‘에너지 사용량을 0으로 만들겠다’며 등장했습니다. 아마 환경에 관심이 많다면 이 이름을 기억하시는 분이 계실 수도 있겠습니다.
‘타운’이라고 해도 우리가 생각하는 ‘마을’은 아닙니다. 100가구 규모의 빌라 단지에 가깝습니다. 인터넷에 ‘영국 친환경 건축’을 검색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단지이지요.
이 단지를 처음 제안한 영국의 사회적 기업 ‘바이오리저널(bioregional)’에 따르면, 베드제드타운의 ‘친환경성’은 대단해 보입니다. 2017년 조사에 따르면, 영국의 일반적인 100가구 규모 단지보다 탄소배출량이 23%나 적습니다. 난방과 전기에 사용되는 탄소만 계산하면 32% 적습니다. 가스 사용량은 36%, 전기 사용량은 27% 적습니다.
건축은 도시 생활에서 가장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 부문입니다. 한국 기준, 국가 배출량의 약 24%가 건축 부문에서 나옵니다. 서울을 기준으로 하면, 배출량의 68.7%가 건물에서 배출됩니다.
그런데 한국은 2022년에도 잡지 못한 탄소배출을 이 작은 단지가, 20년 전에 20%나 줄인 겁니다. 2002년이면 스마트폰이 보편화되기 약 8년 전입니다.
무슨 시대를 뛰어넘는 첨단 기술이라도 쓰였던 걸까요. 아니면 혹시, 주민들이 매일 온수도 제대로 못 틀고 쩔쩔매며 살고 있는 건 아닐까요? 시작만 떠들썩했지, 지금은 흉가가 되어가고 있진 않을까요?
24일 베드제드에 도착했습니다. 위치는 서울로 따지면 안양쯤입니다. 친환경 단지 답게 집집마다 작은 정원이 있는 게 보입니다. 이 정원은 기후위기로 폭우가 잦아질 때 든든한 빗물 흡수원이 됩니다.
숙소에 들어선 기자가 가장 먼저 해본 건 불 켜기, 따듯한 물 틀어보기입니다. 불도 잘 들어오고 물도 콸콸 잘 나오네요. '이런데 탄소배출량을 24%나 줄였다고?' 의심이 더 커져 갑니다.
그러나 숙소 주인 마리앤씨는 “이곳에 온 뒤 전에 없이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듯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됐지만, 정전 한번 겪은 적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마리앤씨는 이곳이 처음 완공된 직후 입주해 20년째 살고 있는데요. 이곳에 입주하기 전 런던에서는 전기료를 아끼기 위해 겨울에도 외투로 꽁꽁 싸매고 지냈답니다. 반면, 이곳에서는 스웨터 한 장만 걸치고도 따뜻하게 지냅니다. 전기 요금은 60%나 절약하면서요.
그 비법은 생각보다 간단했습니다. 우선, 베드제드의 벽은 두께가 30cm입니다. 내외벽에 벽돌을 쌓고, 그 사이엔 암면 단열재를 배치합니다. 일반적인 영국 주택의 벽은 10cm 정도 두께입니다.
이 20cm의 차이가 실내 온도를 크게 바꿔놓았습니다. 사실 한여름에 방문한 탓에 겨울철 실내외 온도 차이를 경험하지는 못했는데요. 영국은 해양성 기후여서 아무리 추운 날에도 기온이 좀처럼 영하권으로 떨어지진 않습니다. 그러나 위도 탓에 해가 2, 3시간밖에 안 뜨고, 비가 많이 내립니다. 한국의 ‘칼바람’ 부는 겨울과 달리, ‘으슬으슬하게 감기 걸릴 것 같은 추위’가 아주 고통스럽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이곳 주민들은 1년에 1·2주, 기온이 아주 낮을 때에만 난방 시설을 켠다고 합니다. 단열이 잘되는 덕에 스웨터만 입고 있어도 춥지 않다는 겁니다. 이곳에 20년째 거주 중이라는 마이크 스톳씨 집엔 아예 난방 설비가 없습니다. 너무 추우면 어떡하냐고요? “오븐을 켜는 것만으로도 집이 훈훈해진다”고 합니다.
이중창을 남향으로 크게 내놓고 모든 집에 베란다를 설치한 것 역시 단열에 큰 역할을 합니다. 한국에서도 아파트에 사용하고 있는 구조로, 외부 공기가 집에 들어오기 전 몇 단계의 관문을 거치도록 합니다.
기자가 이곳에 머문 7월엔 최저 기온이 12도까지 떨어졌는데요. 하루는 일정이 늦어 자정이 넘어 숙소에 돌아왔습니다. 반팔만 입고 나갔다가 팔에 닭살이 돋을 정도로 추웠는데, 집에 들어서자마자 훈훈한 온기를 느꼈습니다. 기분 탓일 수도 있겠지만, ‘이것이 단열효과인가’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러나 역시, 런던은 겨울에 가야 했습니다.
베드제드는 다양한 친환경 실험을 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20년 전에 이미 우리나라의 차량 공유 애플리케이션(앱) 쏘카(Socar)와 유사한 카클럽(Car Club)이라는 프로그램을 도입했습니다. 개인 차량으로 인한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주민들이 차량을 공유하도록 한 것입니다. 전기차 충전소도 마련해 뒀다는데요, 20년 전 기술이라 현재는 사용을 못 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 건축물에 사용한 철근은 인근 기차역을 보수하며 나온 폐철근을 재사용했습니다. 도로 포장에 쓴 모래는 폐유리를 재활용한 것입니다. 전체 자재 무게의 15%(3,304톤)에 폐자재를 사용했고, 52%가 근방 56km 내에서 조달됐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실험 중 현재까지도 살아남고, 가장 눈에 띄는 장치는 옥상 태양광 발전 패널입니다. 바이오리저널에 따르면, 베드제드는 약 776㎡(235평)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는데요. 연간 8만8,000kWh 정도 전력을 생산합니다. 베드제드의 1년 전력 사용량의 20% 정도입니다.
옥상 태양광은 생각보다 효과적인 탄소 저감책입니다. 경기연구원에 따르면, 경기도의 공동주택ㆍ학교ㆍ공공시설 등 건물에 태양광을 전부 설치할 경우, 총 2,365MW의 발전 설비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대략 110만 가구가 1년간 생활할 수 있는 양입니다. 그러나 유지보수에 대한 우려나 규제 탓에 제대로 확대되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 리들스턴 바이오리저널 대표는 “20년 전엔 태양광 시장이 지금처럼 자리 잡지 못했지만, 설비를 사용하고 유지하는 데엔 큰 문제가 없었다”며 “성공한 환경 실험 중 하나이며 탄소중립을 위해 반드시 확대해야 하는 설비”라고 말했습니다. 수 대표도 이곳에서 20년째 살고 있습니다.
물론, 일부 태양광 설비가 고장났음에도 20년 전 부품을 찾지 못해 방치하는 등 유지보수 문제가 있긴 합니다. 그러나 수 대표는 태양광 사용 자체를 만류할 정도로 큰 문제는 아니라고 합니다.
런던은 서울보다 해 뜨는 시간이 훨씬 적고, 비바람도 많이 부는 도시입니다. 그럼에도 긍정론이 나오니, 한국은 더더욱 옥상 태양광 확대에 공을 들여야 하지 않을까요.
이밖에 베드제드는 2017년부터 자체적으로 240kW 규모의 목재펠릿 바이오매스 열병합(CHP) 발전소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2002년에 목재칩을 연료로 하는 발전소를 지었는데, 목재칩 비용이 비싸고 야간 소음이 커서 3년 만에 사용을 중단했다고 합니다. 2010년대 말 바이오매스 발전이 보편화되면서 지금의 발전소를 도입했고, 온수 100%를 이 발전소에서 제공받고 있습니다.
사실 바이오매스를 수십MW 규모의 대형 발전소 원료로 사용하는 것이 되레 환경을 파괴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논란을 아주 잘 정리해둔 ‘그린워싱 탐정’ 기사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규모 바이오매스 발전을 비판하는 환경단체도 △이런 소규모 마을 단위에서 △지역의 폐목재를 사용해 온수를 공급하는 것은 장려하는 분위기입니다.
탄소배출량을 줄이면서도 ‘쩔쩔매지 않으며’ 온수를 사용할 수 있는 비결이 여기 있었던 셈입니다. 이곳에 머문 기자도 매일 불편함 없이 샤워를 했습니다.
이 단지에서 8년 동안 지냈다는 토니 해리슨씨는 이곳에서의 생활이 “수동적으로 친환경적”이라고 설명합니다. 주택 설계가 친환경적으로 되어 있으니 일부러 힘을 들여 애쓰지 않아도 환경 친화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토니는 “처음 이곳에 입주할 땐 이곳이 친환경 단지인지 몰랐다. 부동산에서 안내해줘서 왔고, 오직 넓은 공간과 천장, 마당이 마음에 들어 입주했다. 입주 후에, 에너지 요금이 적게 나오고 기존 주민들이 이유를 설명해줘서 친환경 설계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탄소중립을 위한 개개인의 노력도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책임을 온전히 개인에게 떠맡기지 않고, 국가와 기업이 그런 환경을 최대한 제공해야 한다는 것. 베드제드가 주는 중요한 메시지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취재를 하며 든 질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베드제드가 탄소도 줄이고 생활도 편리하다면 왜 영국은 ‘베드제드 천지’가 되지 않았을까요? 베드제드를 설계한 건축사무소 제드팩토리(zedFactory)는 영국에 18개의 친환경 건축물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영국 주택은 에너지를 더 많이 소비하는 방식으로 건설되었죠.
수 대표는 그 이유로 ‘자본 시장의 논리’를 꼽았습니다. 결국 돈 문제라는 것이죠. 베드제드는 건설비가 일반 주택에 비해 15% 정도 비쌌다고 합니다. 물론, 에너지 요금이 일반 주택의 60% 수준이라, 이 저감분으로 건설비를 상쇄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건설사는 이를 원치 않았고, 정부에서도 이를 바꾸도록 충분한 압력을 가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기술도, 성공 사례도 있는데 돈 때문에 도시 탄소배출량의 68%를 그냥 내버려 뒀다니, 참 애석한 일입니다.
그러나 기후재난을 앞둔 지금, 베드제드의 경험과 기술은 곧 영국 사회 전반으로 퍼질 것 같습니다. 영국 정부가 2019년 강도 높은 건축물 에너지 효율 개선 정책을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예산 규모만 해도 14조 원에 달합니다.
이 정책은 과연 잘 진행되고 있을까요? 런던시의 사업을 맡고 있는 업체의 건설 현장을 찾아간 이야기를 다음 회차에 전달 드리겠습니다.
※이 기사는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