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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세상 설계의 밑작업"...한국 문단 지탱하는 체급으로 돌아온 장강명

입력
2022.08.26 04:3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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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만의 신작....장편소설 '재수사'
장강명표 범죄·철학소설…중견 작가로 첫걸음
살인사건 재수사 현장과 범인 회고록 교차 진행
범인의 입을 통해 집요하게 던진 윤리적 질문

'댓글부대' '한국이 싫어서'의 장강명 작가가 6년 만에 장편소설 '재수사'를 냈다. 2권으로 나눠 출간된 신간에 대해 "(너무 길어서) 팔릴까 걱정도 했지만 가성비 따지지 않고 쓰고 싶은 걸 써봤다"고 말했다. 은행나무 제공

'댓글부대' '한국이 싫어서'의 장강명 작가가 6년 만에 장편소설 '재수사'를 냈다. 2권으로 나눠 출간된 신간에 대해 "(너무 길어서) 팔릴까 걱정도 했지만 가성비 따지지 않고 쓰고 싶은 걸 써봤다"고 말했다. 은행나무 제공

"프로 선수로 치면 체급이 하나 올라간 느낌이에요." 원고지 3,100매에 달하는 장편소설, 보통 장편 분량의 두세 배다. 구상에서 탈고까지 만 3년이 꼬박 걸렸다. 묵직한 내용의 긴 서사를 안정된 호흡으로 써냈다는 성취감은 "앞으로도 이 정도 '체급의 게임'은 치를 수 있겠구나"라는 자신감이 됐다. 작가 장강명(48)이 6년 만에 내놓은 신간 '재수사'는 그의 말마따나 이제 한국 문단을 지탱하는 체급으로 레벨업했음을 보여준다.

그는 22일 한국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여태까지 썼던 것보다 중량감 있는 소설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제일 처음이었다"며 이번 소설 구상의 출발점을 돌아봤다. 동아일보 기자로 일하다 소설가가 된 지 10년이 넘은 그가 이제는 '중견' 작가의 몫을 해내고 싶다는 욕망에 써낸 작품이 '재수사다'다. '표백' '댓글부대' '한국이 싫어서'로 문단과 독자의 선택을 두루 받은 소설가지만, 언제까지 날렵함과 신선함만을 앞세울 순 없었기 때문이다.

2권짜리 소설 '재수사'는 범죄·철학소설이다. 강력범죄수사대 소속 형사 '연지혜'가 22년 전인 2000년 발생한 신촌 여대생 살인 사건을 재수사하는 과정을 쫓아간다. 소설은 100개의 장으로 구성됐다. 독특한 점은 범인의 회고록(홀수장)과 재수사 현장(짝수장)이 배턴터치하듯 꼬리를 물고 가는 형식이다. 이 소설에 무게를 더하기 위한 작가의 선택이었다. 범인의 입을 통해 우리 시대 법과 도덕률, 신과 윤리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계몽주의의 세례"를 받은 현대인의 믿음을 집요하게 논박한다.

재수사1,2·장강명 지음·은행나무 발행·408, 412쪽·각 1만6,000원

재수사1,2·장강명 지음·은행나무 발행·408, 412쪽·각 1만6,000원

그 치열한 논증의 목표는 무엇일까. 작가는 “‘다음 세상’의 설계에 대한 밑작업을 하고 싶었다”고 답했다. 2020년대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로 '공허와 불안'을 꼽은 그는 현대 사회의 기본적 시스템 결함에 주목한다. 결국 시스템에서 야기한 문제라는 얘기다. 전작 '한국이 싫어서' '댓글부대'에 이어 이번 작품에선 한발 더 나아갔다. 특히 형사사법시스템의 허점을 예리하게 파고들었다. "현 시스템의 결함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부분을 보강해야 할지, 다음 세상을 설계해 보자는 그 얘기 자체를 말하고 싶었어요." 그러니까 '재수사'는 '지금 세상(시스템)'은 끝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썼던 데뷔작 '표백'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이런 문제의식이 현학적 글로 빠지지 않았다. 소설 곳곳에 살아있는 현실감 덕분이다. 특히 수사 현장은 이보다 현실적일 수 없다. 공소시효 문제(일명 태완이법)나 경찰의 미제사건 전담팀 운용, 범죄자 DNA 데이터베이스(DB) 구축 등의 현안은 물론 정의와 복수 사이에서 갈등하는 형사들의 고민까지도 장마다 빼곡히 담겼다. (작가는 본보의 연재기사 '완전범죄는 없다'도 좋은 참고 자료가 됐다고 전했다. 소설에도 범인이 이 기사를 언급하는 대목이 나온다.)

'재수사'는 방대한 취재량이 드러나는 작품이지만 장강명 작가 본인은 "소설가로서 기술이 늘면 좋아질지 모르겠지만 아직은 '비효율적'으로 취재하고 우직하게 쓰려고 한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은행나무 제공

'재수사'는 방대한 취재량이 드러나는 작품이지만 장강명 작가 본인은 "소설가로서 기술이 늘면 좋아질지 모르겠지만 아직은 '비효율적'으로 취재하고 우직하게 쓰려고 한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은행나무 제공

독자에게 무거운 질문을 던지는 그에게 작가의 책무는 무엇일까. 그는 세상이 변하는 얘기부터 꺼냈다. "'읽고 쓰는 사람'의 수는 줄고 그 일의 영향력도 작아지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낸 그는 "생각과 사고의 바탕이 되는 게 '읽고 쓰는 일' 특히 '긴 글'"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변하는 사회 속에서 작가, 그러니까 '읽고 쓰는 사람'들은 계속 그 일을 멈추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서로 북돋아주기 위해 그는 아내와 함께 온라인 독서 플랫폼 '그믐'을 운영하면서 새로운 방식의 독서 네트워킹을 만들어가고 있다.

소명의식 덕분인지 차기작 계획도 줄줄이다. 전업 소설가로 9년 넘는 시간 동안 소설, 에세이 등 10여 권의 책을 내며 이미 다작 작가로 알려진 그다. 가장 빠르게는 올해 10월쯤 한국에서 소설가로 사는 것에 대한 에세이가 나온다. 이후 SF소설집과 또 다른 장편까지 족히 2, 3년은 마감 일정이 빼곡해 보였다. 그는 "소설가에게 가장 큰 불행이 쓸 게 없다는 것일 텐데, 전 한동안은 그러지 않을 것 같아 감사하다"며 웃었다. "모든 직군의 사람들이 'N잡러'를 강요받는 시대지만, 소설가가 저의 중심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평생 작가라는 직업에 헌신하게 될 것 같아요." 그의 체급 올리기는 끝나지 않았다.

진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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