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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는 자연스러운 과정” 국내 1호 사립식물원이 국립이 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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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진부에서 월정사로 가는 길 중간쯤, 오대산 자락에 한국자생식물원이 있다. 1999년 문을 연 국내 제1호 사립 식물원이었지만 지난해 7월 산림청에 기부해, 현재는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에서 위탁 운영하고 있다.
식물원을 설립한 김창렬 전 원장(73)은 유럽에선 개인 식물원을 국가에 기부하는 것이 흔한 일이라며 한국자생식물원을 기부한 것도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했다. “나이가 들다 보니 무리하지 말라는 가족의 권유가 컸죠.” 반평생의 성과물을 몽땅 나라에 넘긴 결정이었지만 김 전 원장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며 허허 웃었다. “개인보다 더 잘하겠죠. 본래의 취지를 살려 한국에만 있는 고유 품종, 멸종위기에 처한 식물, 지금은 흔하지만 개체수가 줄어드는 식물 등을 잘 보존하는 기관으로 가꿔가길 기대합니다.”
식물원 입구는 카페를 겸한 도서관이다. 널찍한 홀 전체가 어린이·청소년 도서를 비롯해 과학 예술 역사 등 분야별 1만2,000여 권으로 장식돼 있다. 꽃 내음, 숲 향기 속에서 책장을 넘기며 잠시나마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공간이다.
도서관을 나서면 본격적으로 식물원 산책이 이어진다. 조붓한 탐방로를 따라 희귀자생식물보전원, 멸종위기식물보전원, 한국특산식물보전원, 생태식물원과 독미나리보존원 등 여러 개의 작은 정원이 배치돼 있다. ‘사람명칭·동물명칭식물원’이라는 재미난 정원도 있다. 범꼬리 노루오줌 박쥐나무 제비꽃은 동물에서, 할미꽃 동자꽃 각시취 홀아비꽃대 등은 사람에서 유래한 식물 명칭이다. 독미나리는 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으로 전국에서 유일하게 이곳에서만 대량 증식하고 있다. 한국 특산 식물 250여 종을 비롯해 국내 자생 식물 4,500여 종 중 1,500여 종이 정원 곳곳에 숨겨져 있다.
요즘에는 노란 마타리와 보랏빛 부처꽃, 안개꽃을 닮은 가는대나물, 꽃자루가 우산살처럼 펼쳐진 강활 등을 볼 수 있다. 특히 생태식물원의 산수국 군락지가 이색적이다. 풍성한 꽃잎은 이미 좁쌀만 한 열매로 변했지만, 벌과 나비를 유혹하기 위한 가화(假花)는 그대로 매달려 있다. 아름드리 적송 아래 어둑한 꽃밭에 분홍 보라 흰색 꽃잎이 나비처럼 나풀거린다.
정원을 돌다 보면 2개의 조형물이 눈길을 잡는다. 소녀상에 무릎을 꿇고 고개 숙인 남성을 형상화한 작품 ‘영원한 속죄’는 2020년 설치할 때부터 당시 일본 총리인 아베를 빗댄 게 아니냐는 논란을 빚었다. 식물원에 굳이 정치색이 짙은 조형물을 설치할 이유가 있느냐는 비판도 있었지만, 김창렬 전 원장은 조경의 하나로 봐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도 “일본 총리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과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세웠다”는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산림청으로 소유권이 넘어간 현재, 논란이 부담스러운 듯 조형물 옆에는 ‘작품은 개인 소유’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또 하나는 숫자 ‘100’ 조형물이다. 작품 옆면에 마라톤을 100회 이상 완주한 사람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김 전 원장도 140회 이상 완주한 마라톤 마니아다.
식물원은 민가에서 떨어진 숲속에 위치해 조용하게 산책하며 사색에 잠길 수 있는 분위기다. 대규모 군락은 없지만 야생화처럼 수수하고 정감 가는 정원이 매력이다. 입장료 5,000원을 내면 2,000원짜리 작은 화분을 선물로 준다.
이곳에서 풍성한 가을꽃을 보지 못해 섭섭하다면 평창읍의 백일홍 꽃밭에서 아쉬움을 달랠 수 있다. 평창읍의 평창강변에서는 6일부터 12일까지 백일홍축제가 열린다. 1,000만 송이 형형색색의 백일홍이 강변 공원을 화사하게 장식한다. 3년 만에 열리는 관광축제로 7080콘서트, 청소년페스티벌, 가요제 등 다양한 공연도 펼쳐질 예정이다.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인 봉평면 일대에서도 9월 초·중순 하얀 메밀꽃을 볼 수 있다. 이효석문학관, 효석달빛언덕, 이효석문학의숲으로 구성된 효석문화마을 산허리마다 메밀밭이 조성돼 있다. 지난주 내린 폭우로 메밀밭 일부가 유실돼 축제는 열지 못하게 됐지만 아쉬운 대로 가을의 정취를 담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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