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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구호도 '양극화'… 부자 나라는 우크라만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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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주의’도 때로는 차별적이다. 국제 사회는 전쟁으로 쑥대밭이 된 우크라이나를 위해선 아낌없이 온정을 베풀었지만, 수십 년째 빈곤과 폭력으로 고통받는 아프리카와 중동 국가들에는 무신경했다. 도움의 손길이 뜸해진 빈국에선 자금이 부족해 지원 프로그램이 중단되거나 식량 배급을 줄이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국제 구호의 ‘부익부 빈익빈’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가려진 또 다른 비극이다.
22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올해 유엔과 산하 기구들은 전 세계 2억 명에게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기 위해 모금 목표액을 488억 달러(약 65조5,000억 원)로 잡았지만, 7월까지 모인 금액은 3분의 1에 불과하다. 마틴 그리피스 유엔 인도주의·긴급구호 담당 사무부총장은 “지원금 목표액과 실제 모금액 격차가 역대 가장 큰 것 같다”며 무거운 숨을 내쉬었다.
심지어 올해 필요한 구호 자금은 지난해 376억 달러(약 49조3,000억 원)보다 100억 달러(약 13조4,200억 원) 이상 크게 늘었다. 코로나19 대유행 여파와 극심한 가뭄,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겹친 탓이다.
지원금은 주로 우크라이나에 쏠렸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UNOCHA)은 우크라이나 국외 난민과 국내 피란민을 돕기 위해 60억 달러(약 8조520억 원)를 특별 요청했는데, 미국과 유럽연합(EU), 개별 유럽 국가들, 일본, 캐나다 등 부국들이 유엔에 맡긴 지원금으로 이미 다 채워졌다.
반면 다른 빈국들은 소외됐다. 세계 최빈국 아이티를 위한 모금액은 11%에 그쳤고 △엘살바도르는 12% △부룬디는 14% △미얀마는 17%로 목표치를 한참 밑돌았다. 인도주의 위기가 특히 심각한 △시리아(23.9%) △아프가니스탄(41.8%) △예멘(42.1%)은 그나마 사정이 낫지만, 자금 부족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다.
그리피스 사무부총장은 “임시방편으로 유엔 긴급대응기금을 활용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도, 지속가능하지도 않다”며 “부국들이 우크라이나에 쏟는 관대함을 다른 나라에도 보여달라”고 호소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국익과 직결되는 지정학적 위기로 여기는 부국은 인도적 지원을 정치적 지렛대로도 활용하고 있다. 러시아를 응징하고, 서방 동맹을 결속시키며, 중국에는 무력 도발 자제를 경고하는 메시지까지 전달하려는 목적이라는 것이다. 캐스린 머호니 유엔난민기구 대변인은 “정치적 약속이 있을 때 얼마나 빠르고 광범위하게 난민에 대한 지원과 인도주의 대응책이 동원되는지 우크라이나 전쟁은 매우 극명하게 보여줬다”고 짚었다.
헌신에 가려진 위선적 이면도 간과할 수 없다. NYT는 “국제 구호단체들은 주요 기부국들이 폭력과 빈곤에서 벗어나려 도망친 아프리카·중동 난민보다 백인과 기독교인이 압도적으로 많은 우크라이나 난민에 훨씬 많은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인도주의 양극화’에도 인종적·종교적 차별이 내재돼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유럽은 아프리카와 중동 난민들에겐 빗장을 흔쾌히 열어주진 않았지만, 우크라이나 난민은 600만 명이나 포용했다. 난민에 적대적이었던 폴란드는 혼자서 무려 500만 명을 수용했고, 유럽에서 가장 엄격한 반이민법을 가진 덴마크는 우크라이나인에게 긴급 거주권과 취업 허가권을 제공하는 법안까지 마련했다. 과거 지중해를 건너온 난민들을 추방했던 그리스도 우크라이나인에게는 따뜻했다.
그러는 사이 가난한 나라 출신 난민들은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에티오피아에선 난민 75만 명이 식량이 없어 굶주리고, 예멘에선 식량 배급이 삭감됐다. 시리아 난민 8만 명이 살고 있는 요르단 난민캠프에는 하루 9시간만 전기가 공급된다. 캠프 내 난민 92%는 이미 식사량도 줄였다고 한다.
국제 구호단체도 돈이 있어야 사람을 살릴 수 있다. 우간다, 콩코민주공화국, 수단, 이라크, 예멘 등 빈국 12개 나라에서 운영되는 난민 지원 프로그램은 현재까지 확보한 지원금이 30%에도 못 미쳐 중단될 위기다. 유엔난민기구는 최근 보고서에서 “올해 10억 달러(약 1조3,400억 원)가 추가 투입되지 않으면 교육받는 어린이가 12% 줄고, 쉼터에 입주할 수 있는 난민은 25% 감소하며, 의료 혜택을 받는 사람도 23% 급감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머호니 유엔난민기구 대변인은 “국외 난민과 국내 실향민들이 벼랑 끝에 몰리고 있다”며 “구호단체들이 가슴 아픈 선택을 해야 하는 현실이 비통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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