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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301조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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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대공황 직후인 1930년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관세법을 제정했다. 반덤핑 관세, 외국 기업의 보조금과 세제 혜택에 대한 상계관세 및 불공정 제재가 골자였다. 그 법으로 인해 1932년 평균 관세율은 최대 59.1%까지 치솟았고, 다른 국가들도 관세 장벽을 잇달아 높임으로써 세계경제는 물론, 미국 수출기업에도 타격을 입혔다.
미국 정부와 의회는 대통령에게 무역국 쌍방의 관세협정 체결 권한을 부여한 1934년의 ‘상호무역협정법’과 무역 자유화의 첫 다자협상인 GATT 체제(1934)를 출범시키며 미국 주도 자유주의 무역정책으로 선회했다. 하지만 1950년대 냉전이 본격화하면서 국가 안보를 위한 무역 규제와 우방국 지원이 절실해졌다. 대통령의 통상협상 권한을 강화한 1962년 ‘무역확장법’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무역대표부(USTR)의 전신인 특별무역대표부(STR)가 그때 만들어졌고,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수입 규제 조항’이 추가됐다.
베트남전쟁으로 인한 재정적자와 1970년대 오일쇼크, 스태그플레이션의 타개책으로 제정된 닉슨의 1974년 통상법에 악명 높은 ‘제301조’가 포함됐다. 대통령에게 불공정 무역 국가와의 무역협정 양허를 중지 취소하고 특별관세 부과 및 수입제한 조치를 취할 수 있게 한 거였다.
하지만 무역적자는 해소되지 않았고, 특히 반도체 자동차 등 대일 무역적자는 심화했다. 1988년 8월 23일 제정된 ‘종합무역법’에는 2년 한시 조치인 ‘슈퍼 301조’가 첨가됐다. 불공정 무역 상대국을 ‘우선협상대상국’으로 지정해 신속 협상을 벌이고, 고율 관세 등 보다 광범위한 보복 조치를 가능하게 한 조항이었다. 한국도 1997년 10월 자동차 우선협상대상국으로 지정됐고, 두 달 뒤 IMF 외환위기를 맞았다.
슈퍼 301조는 1995년 WTO 체제 출범 이후에도, 협정상의 공식 분쟁 절차에 아랑곳하지 않고 클린턴 정부 행정명령으로 2001년까지 세 차례 부활했고, 트럼프와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국 무역분쟁 무기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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