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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봄을 보게 해준 '아는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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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 안으로 처음 보는 중년 여자분이 들어왔다. 모니터에는 초진이라는 노란색 표시가 이름 옆에 붙어 깜박거렸다. 뒤따라 들어온 남자분은 낯이 익었는데, 몇 년 전 내게 직장암 수술을 받은 환자였다. 내 기억에는 분명 남편이 환자인데, 왜 부인이 먼저 들어와 내 앞에 앉는지 이내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부인이 내미는 진료의뢰서를 보니 그제야 상황이 이해되었다. 그녀는 건강검진에서 대장암을 진단받았다고 했다. 그녀는 "2년 전 남편이 직장암에 걸려 치료받을 때 옆에서 늘 함께 겪어왔다"며 "그런데 막상 내가 대장암 진단을 받으니, 그 끔찍한 고통의 터널을 지날 생각에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검사, 입원, 수술, 항암치료, 다시 검사.
환자들에게는 나를 진료한 의사의 말을 '아는 의사'에게 확인받고 싶어 하는 묘한 심리가 있다. 건너 건너 아는 의사는 그 분야의 전문가도 아니지만, 내 입장에서 내 편을 들어줄 사람이면 그저 족하다. 갑작스럽게 내 안에 생긴 큰 병에 대해,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느리고 쉬운 나의 언어로 재구성하여 그 불행의 의미를 풀어낼 때, 옆에서 경청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 사람이 병을 치료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더할 나위가 없다. 그녀는 예기치 않은 절망의 순간에, 같은 병에 걸렸던 남편을 집도했던 나를 떠올리며 평정심을 찾을 수 있었다고 했다. 나는 입원장을 쓰면서 "많이 놀라셨겠어요. 유명한 병원, 고명한 의사도 많은데, 저를 믿고 다시 떠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번에도 같이 잘해보자고요"라고 일부러 너스레를 떨었다.
입원 중에 그녀는 혼자였다. 보호자도 없고, 간병인도 쓰지 않고, 오롯이 혼자의 힘으로 자신을 지키고 있었다. 아이들은 어리고, 남편은 일이 바쁘다고 했다. 수술을 마친 오후가 되어서야, 남편이 처음으로 병동에 나타났다. 자기가 힘들 때 곁을 지켜줬던 아내를, 이번에 제대로 돌보지 못한 남편에 대해, 나는 주제 넘게도 약간의 핀잔을 줬다. 남편은 자기가 없으면 회사 일이 잘 돌아가지 않는다고 했다. 몇 년 전 직장암으로 방사선 치료와 수술과 장기간의 항암치료도 했으니 회사에서 눈치가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눈 밖에 나서 해고당하지 않고, 계속 돈을 벌어야 병원비를 충당할 것이다. 남편은 아내의 병 또한 자신의 탓이라고 여기는 듯했다. 좋은 것을 나누기에도 짧은 인생인데, 나쁜 것을 닮아 나눠 가지게 되어서 면목이 없다고 했다.
수술 후 잘 회복해 퇴원하고, 진료실에서 '재진 환자들'로 그 부부를 다시 보게 되었다. 유감스럽게도 잘라낸 대장에서 림프절 전이가 있는 3기 대장암으로 확정되어, 항암치료라는 보충수업이 필요했다. 그녀는 의외로 흔쾌히 항암치료를 하겠다고 했다. 남편이 했던 걸 보니, 수술이 제일 힘들었고, 약물치료는 견딜 만했다고 했다. 같은 병에 걸린 부부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서로 배우고 의지가 되고 있었다. 그녀는 오래 다녔던 회사에서 이번 일로 권고사직을 당했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그런 직장이 있냐며 흥분하는 나를 보면서,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진료실을 나갔다. "아무렴 어떻습니까? 저희 부부에게 다시 따뜻한 봄을 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거면 됐습니다."
*사연의 활자화에 기꺼이 동의해주신 환자분께 지면을 빌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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