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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듯한 보수정부가 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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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국민 여러분 미안합니다. 지금처럼 살 순 없지 않습니까.’
지난달 마무리된 대우조선해양 파업사태는 세계 1위라는 우리 조선업의 명성은 하청노동자들의 저임금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감추고 싶은 진실을 드러냈다. 용접한 철제감옥에 스스로를 가둔 파업노동자들의 ‘옥쇄파업’ 방식은 논란이 됐지만, 7년 만에 찾아온 조선업 호황에 찬물을 끼얹는 불법파업에는 공권력을 동원해서라도 진압해야 한다는 사용자들의 강경한 목소리는 별로 힘을 얻지 못했다. 반면 임금 30% 인상을 요구했다가 '겨우’ 4.5% 인상에 타협했는데도, 불만을 토로하는 대신 파업을 통해 자신들의 비참한 처우를 사람들에게 알리게 돼 감격했다는 파업노동자들의 말에는 많은 시민들이 미안함을 느꼈다.
파업이 타결된 지 한 달이 다 돼가지만, 일부 정규직들로부터 ‘하퀴벌레’라는 모욕적인 말까지 들었던 하청노동자들의 삶이 나아질까라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하기 어렵다. 정부조차 조선소를 떠난 노동자들이 돌아올 것이라는 확신이 없다. 하청노동자의 처우 개선이라는 근본 해법 고민은 없이 모자라는 일손은 외국인으로 채우겠다는 대책을 내놨기 때문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숙련도가 낮아 앞으로 우리 조선업이 추구할 방향인 고품질 선박 건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묵살됐다. 어찌됐건 이번 파업사태의 귀결이 비정규직 노동자와 외국인 노동자 문제라는 사실은 시사적이다. 이들은 모두 한국사회에서 시민적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5년 만에 재집권한 보수정부인 윤석열 정부에 대한 기대는 ‘따듯한 보수정부’다. 따뜻한 보수정부의 가치는 사회적 약자들의 시민권을 확대하고 예산을 투입하는 행위로 실현된다. 부자감세를 금과옥조로 삼고 있기에 미덥지는 않지만 지난 15일 예산을 절약해 그 예산으로 ‘서민과 사회적 약자’들을 두껍게 지원하는 데 쓰겠다고 한 윤 대통령의 발언은 그래서 반가웠다. 보수정부가 특히 약자들의 권리 신장에 노력을 해야 하는 이유는 보수가 추구하는 공동체의 안정적 유지와도 직결된다.
이미 한국사회는 약자 배제와 약자 혐오가 넘실거리는 사회로 변했다. 신자유주의 체제의 특징인 노동의 유연화와 그 결과인 실업, 불안정 취업, 해고에 대한 공포는 극단적 안정희구 심리로 나타나고 이는 자주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배제와 결합된다. 개인들이 자신의 불행에 매몰될수록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보장하자는 목소리는 묵살된다. 의도적으로라도 사회적 소수자들의 권리를 북돋우는 데 힘써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약자 배려를 약속한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에는 역대 정부가 모두 약속했던 비정규직 대책이 빠져있다. 대우조선 사태 이후 무분별한 손해배상ㆍ가압류 청구가 파업노동자들을 궁지에 빠뜨린다는 여론이 높아졌지만 새 정부가 내건 ‘법과 원칙’이라는 구호에 파업 노동자들의 고통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그뿐일까. 각 부처에 흩어진 이민정책을 총괄조정하기 위해 이민청을 설립하겠다면서도 이주노동자들에게 족쇄가 되는 고용허가제의 사업장 변경 제한규정을 손보겠다는 얘기는 나오지 않는다.
얼마 전 새 정부는 고용률 착시 효과를 가져오는 재정투입 일자리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공공형 노인 일자리’를 대대적으로 구조조정하겠다고도 했다. 빈약한 노인복지를 보완한다는 순기능을 무시한 채 이런 일자리를 줄인다면 많은 노인들은 곤경에 처할 게 뻔하다.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노동자, 노인, 장애인, 반지하주택의 기초생활수급자… 이 정부가 배려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권리를 보장해야 할 존재들의 목록은 여전히 길다. 윤석열 정부는 과연 이들을 보듬어 줄 따듯한 보수정부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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