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법의 계보

입력
2022.08.05 18:00
22면
구독

6공 출범 직후 야3당 공동 경찰법안
전향적 내용에도 3당 합당 탓 사장돼
이상적 경찰개혁 방향 설정에 참고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행정안전부 산하 경찰국 공식 출범일인 2일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정부서울청사 내 경찰국 사무실을 방문해 김순호 경찰국장 등 직원들과 함께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홍인기 기자

행정안전부 산하 경찰국 공식 출범일인 2일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정부서울청사 내 경찰국 사무실을 방문해 김순호 경찰국장 등 직원들과 함께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홍인기 기자

1988년 노태우 정부 출범과 함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부천서 성고문 사건, 김근태 고문 사건 등 5공 군사정권 시절 경찰의 만행이 본격 단죄되면서 경찰의 정치적 중립 요구가 높아졌다. 노 대통령 취임 두 달 뒤 치러진 총선에서 사상 처음 '여소야대' 구도를 일군 3김(金)의 야3당은 경찰 제도 개편을 핵심 입법 과제로 삼았다. 김영삼이 이끄는 민주당이 그해 10월, 김대중의 평민당이 11월에 각각 경찰법안을 발의했고 이듬해 5월엔 김종필의 공화당이 뒤따랐다.

야3당은 1989년 9월 경찰법 단일안 마련에 합의하고 11월 말 법안을 발의했다. 제안 이유는 이렇다. '경찰이 정권 유지를 위한 전위역으로 이용당하고 본래 사명을 망각함으로써 공권력에 대한 국민 신뢰를 크게 저해하고 이 나라 민주주의 발전에 커다란 장애요소가 돼왔다.' 3김은 총재회담을 갖고 경찰법을 회기 내 반드시 처리하자고 뜻을 모았다.

법안의 핵심일 수밖에 없는 경찰의 정치 중립성 보장 방편은 당시 내무부 치안본부로 편제돼 있던 경찰기구의 '독립'이었다. 국무총리 산하에 합의제 심의·의결기구인 국가경찰위원회를 설치하고 그 밑에 경찰청을 둔다. 위원 7인 가운데 4명은 국회 선출, 3명은 총리 제청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고 위원장은 국무위원에 보한다. 국가경찰위는 경찰청장 제청권(대통령 임명)을 갖고 인사·예산·수사 등 경찰행정 전반에서 경찰청을 감독한다. 경찰청장은 시도 경찰본부를 지휘하고 본부장 임명 제청권(국가경찰위 임명)을 갖되, 지자체 소속으로 지자체장에게 위원 임명권이 있는 시도 경찰위원회가 본부 관리 권한과 본부장 제청 동의권을 행사한다.

정부의 경찰 지배를 견제하고 지방분권을 가미한 야권 경찰법안은 그러나 발의 두 달 만인 1990년 1월 집권 민자당과 민주당, 공화당의 '3당 합당'으로 좌초되고 말았다. 경찰 개혁 동력이 사라진 상황에서 노 대통령은 그해 경찰의날(10월 21일)에 "내년 안에 경찰청을 발족하겠다"고 공언했고, 정부는 두 달 뒤 경찰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분단국 안보 상황 등을 감안해 국가경찰제를 유지하면서 경찰 중앙 조직으로 내무부 소속 경찰청을, 지방 조직으로 시도지사 소속 지방경찰청을 두는 것이 정부안 골자였다. 여기에도 경찰 주요 정책, 인권 보호 사항 등에 대한 심의·의결기구로 경찰위를 신설하는 내용이 포함됐지만, 위원회가 내무부 소속이고 위원 제청권이 내무부 장관에게 있다는 점에서 야당안과 차이가 컸다. 정부안의 바탕이 된 행정개혁위원회 건의안(1989)과 비교하더라도, 경찰위 의결사항이 내무장관과 경찰청장을 기속하는 원래 방안 대신 장관이 위원회에 재의를 요구할 수 있다는 내용을 넣어 경찰위 권한을 약화했다.

합당으로 탄생한 거대 여당은 1991년 5월 정부안을 거의 원안 그대로 단독 통과시켰다. 평민당이 수정안을 제시하며 반발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정부 역시 '경찰행정의 책임성과 독자성 보장' '경찰운영의 민주성과 공정성'을 제안 이유로 들었지만, 야3당의 획기적 단일안 제출을 가능하게 했던 당대의 경찰 민주화 여론과는 거리가 있는 경찰법이 제정되고 말았다.

지난 2일 행정안전부의 경찰국 설치 완료로 소강 상태를 맞은 정부의 경찰 통제 논란도 결국은 31년 전 강행된 '불완전 입법'에서 비롯한 셈이다. 그럼에도 경찰의 독립 외청화, 국가경찰위 설치를 비롯한 경찰법 근간이 경찰의 과거 흑역사에 대한 반성의 산물이란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법령 자구를 따져가며 정당성을 강변하는 작금의 정부 조치보다, 30여 년 전 정치적 격변에 사장된 법안이 경찰 제도의 이상형에 더 가까울 터이다.

이훈성 논설위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