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만난 슈뢰더 "우크라, 크림반도 포기하라"… 젤렌스키 "역겹다"

입력
2022.08.04 10:24
수정
2022.08.04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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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뢰더 전 독일 총리 "러시아 협상 원해" 주장
우크라 "협상하려면 러군 즉각 철군하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왼쪽)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3일 키이우를 방문한 우르마스 레인살루 에스토니아 외무장관과 악수하고 있다. 키이우=AP 뉴시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왼쪽)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3일 키이우를 방문한 우르마스 레인살루 에스토니아 외무장관과 악수하고 있다. 키이우=AP 뉴시스

러시아가 협상을 원한다면서 우크라이나에 “크림반도를 포기하라”고 주장한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의 인터뷰 발언에 대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역겹다”며 분노했다. 슈뢰더 전 총리는 최근 러시아 모스크바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고 돌아왔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3일(현지시간) 영상 연설에서 “유럽 주요 국가의 전직 지도자가 자신들의 가치에 반하는 전쟁을 벌이는 러시아를 위해 일하는 모습을 보니 역겹다”며 슈뢰더 전 총리를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슈뢰더 전 총리는 이날 독일 주간지 ‘슈테른’ 인터뷰에서 “크렘린궁이 협상으로 전쟁을 끝내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튀르키예와 유엔의 중재 아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흑해 항로를 이용한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을 재개한 것이 그 증거”라면서 “곡물 협상에서 이룬 진전을 토대로 휴전 협상을 점차 확대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슈뢰더 전 총리는 구체적인 종전 해법으로 우크라이나에 크림반도 영유권 포기를 제시했다. 러시아에는 돈바스 지역을 우크라이나 영토로 인정할 것을 촉구했다. 대신 돈바스 내 러시아계 주민에게는 특별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겉으로는 양측 모두에 양보를 조언하는 듯한 태도를 취했지만, 발언 내용을 따져보면 그간 푸틴 대통령이 요구했던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달 13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2022 아시안 리더십 컨퍼런스 개회식에서 게르하르트 슈뢰더(오른쪽) 전 독일 총리가 부인 김소연 씨와 대화하고 있다. 뉴스1

지난달 13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2022 아시안 리더십 컨퍼런스 개회식에서 게르하르트 슈뢰더(오른쪽) 전 독일 총리가 부인 김소연 씨와 대화하고 있다. 뉴스1

우크라이나는 즉각 반발했다.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보좌관은 트위터에서 슈뢰더 전 총리를 “러시아 궁중의 대변인”이라고 규탄하면서 “곡물 수송에 대해 합의가 됐다고 해서 이것이 더 큰 협상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포돌랴크 보좌관은 “러시아가 대화를 원한다면 공은 러시아가 쥐고 있다”며 “먼저 공격을 중단하고 병력을 철수하면 건설적인 대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드미트로 쿨레바 외교장관도 “푸틴의 심복들이 러시아를 두둔한다”며 날을 세웠다. 그는 트위터를 통해 “우리는 대포 공격, 민간인들에 대한 미사일 테러, 대규모 잔혹 범죄를 목격하고 있다”며 “러시아는 여전히 전쟁에 몰두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모두 연막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영토를 단 1m도 내주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2014년 친러시아 반군이 점령한 분쟁지 돈바스는 물론, 러시아가 강제 병합한 크림반도도 탈환하겠다고 선언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최근 인터뷰에서 “러시아 침공으로 잃은 영토를 되찾지 않고 휴전을 한다면 전쟁이 장기화하는 빌미만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슈뢰더 전 총리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반대하면서도 푸틴 대통령과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2017년부터 러시아 국영 석유회사 로즈네스트 이사장을 맡아 왔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직전에는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 가즈프롬 이사로도 임명돼 거액의 보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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