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를 순방 중인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한국행에 앞서 2일 밤 대만을 방문하면서 미중 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미국 권력 서열 3위 펠로시의 대만 방문 계획을 '하나의 중국' 원칙을 어긴 주권 침해로 규정하고 시진핑 주석이 직접 '불장난'이라 경고했던 중국은 이날 대만해협 중간선 부근에 군용기와 군함을 배치하고 인근 해역에서 실탄 사격 훈련을 하며 무력 시위를 벌였다. 당초 펠로시를 만류했던 백악관은 "하원의장은 대만을 방문할 권리가 있다"고 엄호하며 항모 전단을 대만 부근에 배치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대만도 중국의 도발에 대비해 군사 대비 태세를 격상했다.
미중 전략적 대결의 '화약고' 대만해협에 불이 붙은 모양새다. 미국은 중국이 대만을 무력 통일해 아태 지역 요충지인 대만해협을 장악할 가능성을 우려해왔고, 중국은 미국이 양안 관계 안정을 지지한다면서도 대만 독립을 부추길 거라고 의심해왔다. 이번 갈등엔 양국 정치 일정까지 맞물렸다. 중국은 시 주석의 3연임을 결정할 오는 10월 전국대표회의를 앞두고 있어 대만 문제에 양보 없는 태세다. 펠로시가 톈안먼·홍콩 민주화 시위를 옹호해온 '대중 매파' 정치인이란 점도 강경론을 부추겼다. 펠로시가 소속된 미국 민주당 또한 바이든 대통령 지지율 하락 속에 11월 중간선거에서 하원 다수당 지위가 위태로운 터라 쉽게 물러설 수 없는 국면이다.
북한 핵무장,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이어 한반도를 둘러싼 '한미일 대 북중러' 갈등구도는 한층 첨예해졌다. 우리도 자칫 불똥을 맞게 될 판이다. 대만해협에서 무력 충돌이 현실화한다면 주한미군 투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이미 미중과 '사드 3불(不)'로 얽힌 한국이 양국 대치에 깊숙이 개입되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한국, 대만, 일본을 규합해 반도체 분야에서 중국을 고립시키려는 미국의 칩4 동맹 구상은 또 다른 갈등의 뇌관이다. 정부의 선제적 위기관리 능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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