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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의 '고요한 천사'

입력
2022.07.20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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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0 도브리 도브레프

불가리아 바일로보 거리의 성자 도브리 도브레프. orthodoxyindialogue.com

불가리아 바일로보 거리의 성자 도브리 도브레프. orthodoxyindialogue.com

불가리아인 도브리 도브레프(Dobri D. Dobrev, 1914.7.20~2018.2.13)는 만 86세 때인 2000년, 전 재산을 정교회 성당에 기부한 뒤 고향 바일로보(Bailovo)의 좁은 성당 부속시설에서 기거했다. 그날부터 매일 아침 숙소에서 소피아 알렉산더네프스키 대성당까지 약 20km를 걸어 성당 앞에 앉거나 서서 ‘구걸’한 뒤 숙소로 돌아가는 일과를 반복했다. 허름한 옷에 덥수룩하게 다듬지 않은 머리와 수염 등 외모만 보고 대개는 그를 걸인으로 오해했다. 구걸하는 사람이니 걸인이라 해도 영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게 모은 돈은 한 푼도 자기가 쓰지 않았으니 결코 ‘빌어먹는 사람’은 아니었다.

숨을 거둘 때까지 17년여 동안, 그는 8만여 불가리아 레프(lev, 약 5,000만 원)를 모아 성당과 수도원, 고아원에 기부했다. 탁발의 수도승처럼, 그에게 하루 왕복 40km의 걷기는 종교적 고행이었고, 구걸과 기부는 남은 생의 에너지를 신과 세상에 바치는 헌신이었다. 아는 이들은 그를 ‘바일로보의 성자(The Saint of Bailovo)’라 불렀다.

그는 1차대전이 발발하기 불과 8일 전 태어났다. 아버지는 독일 진영(동맹국)이었던 불가리아군에 징집돼 전사했고, 그는 어머니의 노동으로 성장했다. 학력과 직업 등 그의 개인사는 거의 알려진 바 없다. 만 25세에 2차대전이 터졌으니 그도 참전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소피아에서 포탄 폭발로 청력을 잃었다는 기록만 있을 뿐, 군복무 여부도 불투명하다. 불가리아는 그 전쟁에서도 나치의 강압으로 추축국 편에 섰고, 그는 여러 친구를 잃고 진저리나는 비참을 경험했다. 그 와중에 40년 결혼해 4남매를 낳았고, 점차 종교(정교회)의 영성 세계 속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과묵한 그는 고행의 까닭 역시 “한때 못된 짓을 한 적이 있다”고만 했을 뿐, 아무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다. 2015년 제작된 그의 추모 다큐멘터리 제목은 ‘고요한 천사(The Silent Angel)’였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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