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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빌린 항공기 안 돌려줘"… '눈 뜨고 코 베인' 서방 임대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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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서방 제재를 구실 삼아 강탈하다시피 한 외국 항공기가 400대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 항공사들은 주로 외국에서 항공기를 빌려서 운항해 왔는데, 경제 제재를 받게 되자 그에 대한 대응으로 항공기와 항공기 부품 반환을 수개월째 거부하고 있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무려 100억 달러(약 13조700억 원) 규모로, 러시아가 서방 항공기를 인질로 붙잡고서 제재 무력화를 노린다는 분석도 나온다.
1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러시아 항공업계가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 사용했던 상용 항공기 968대 중 515대가 외국 임대회사 소유로, 그 가운데 반환된 물량은 80대에 불과하다.
세계 최대 항공기 임대회사 에어캡은 항공기 100대 이상을 돌려받지 못했고, 스미모토캐피탈도 항공기 34대를 빼앗겼다. 에스토니아 항공 서비스회사 마그네틱 MRO는 러시아에 대여한 보잉 항공기 엔진 4기를 반환하라고 요구했으나 단칼에 거절당했다.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 항공업계가 보잉과 에어버스, 서방 임대회사 등에 크게 의존한다는 점을 겨냥해 전쟁 발발 후 러시아 항공사와의 거래를 금지하는 제재를 단행했다. 이에 항공기는 물론 △엔진 △전자기기 △소프트웨어 등 항공기 관련 모든 부품 판매가 중단됐다.
러시아가 운영하는 항공기를 정비하거나,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해서도 안 되며, 심지어 러시아에 임대된 서방 항공기에 연료를 공급하는 행위도 규제를 받게 됐다. 러시아 항공업계를 완전히 고립시켜 경제 제재 효과를 높이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제재는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항공기 임대회사들이 러시아 측에 임대 계약 해지를 통보하고 항공기 반환을 요구했으나, 러시아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심지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3월 외국 항공기들을 압류해 자국 항공기 등록 명단에 포함시키는 법에 서명했다. 서방 항공기 회사들은 그야말로 눈 뜨고 코 베인 처지가 됐다.
피해 규모도 막대하다. 영국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에어캡은 35억 달러(약 4조5,700억 원), 스미모토캐피탈은 16억 달러(약 2조870억 원)를 각각 보험사에 청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항공기 임대회사 전체 보상금 규모는 100억 달러로 추정된다. 경제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는 “누구에게 손실 배상 책임이 있는지를 놓고 법적 다툼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세계 최대 보험업자협회인 런던로이즈는 이미 법률 검토에 착수했다”고 전했다.
러시아는 해외에 나가 있는 임차 항공기를 서방의 압력에도 보란 듯이 다시 러시아 땅으로 복귀시키는 등 항공 제재 전쟁에서도 승기를 잡아 가고 있다.
실제 지난달 2일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에서 출국하려던 러시아 아에로플로트 항공기는 에어캡이 스리랑카 법원에 억류를 요청해 이륙이 금지됐으나 끝내 몰수되진 않았다. 러시아가 석유 공급을 무기로 스리랑카 정부를 압박했기 때문이다.
관광산업 침체와 에너지 부족으로 최악의 경제난을 겪고 있는 스리랑카는 나흘 뒤 이륙을 허가했고, 에어캡은 손 놓고 이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WP는 “러시아 입장에선 서방 제재에 맞선 어려운 싸움에서 승리했다는 의미”라며 “러시아가 약소국을 지렛대 삼아 자국 경제를 방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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