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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 프린터 유령총', 총기 청정국 한국 위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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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사제총’에 의해 숨지면서 ‘총기 청정국’을 자부하던 열도가 충격에 빠졌다. 사제 총기 범죄는 이웃나라의 일이 아니다. 그간 국내에서도 잊을 만하면 터졌고,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그때뿐이었다. 가뜩이나 ‘3차원(3D) 프린터’의 등장으로 정교함과 위력을 한층 높인 ‘고스트건(Ghost gunㆍ유령총)’이 범람할 우려마저 커지고 있다.
2016년 10월 일어난 ‘오패산 총격사건’은 국내 대표적 사제총 범죄다. 성범죄 전과자가 서울 강북구 오패산터널 인근에서 직접 만든 총기를 난사해 경찰관 한 명이 사망했다. 해당 무기는 나무에 쇠파이프관을 덧대 만들고 심지에 불을 붙여 화약이 폭발하면 베어링(쇠구슬)이 발사되는 조악한 수준이었다.
요즘은 다르다. 3D 프린터 덕분에 훨씬 정교한, 총기다운 부품 생산이 가능해졌다. 원래 3D 프린팅은 열가소성 수지를 뽑아내 층층이 쌓는 방식(FDM)이라 제품도 열에 약했다. 총기 부품을 만들어도 격발 시 발생하는 열 때문에 형태 유지가 어려운 것이 약점이었다. 그러나 몇 해 전부터 기존보다 3배 이상 강도가 높은 광경화성 수지 제작(SLA)이 보편화됐다. 선영태 전 대경대 3D 프린팅과 교수는 11일 “설계도면과 재료, 3D 프린터만 갖추면 총 한 자루를 뚝딱 만들 수 있는 시대”라고 설명했다.
이미 미국에서는 3D 프린터로 만든 고스트건이 골칫거리가 된 지 오래다. 특히 3D 유령총은 익명성과 탐지가 어려운 은밀성은 물론,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위험성을 더한다.
법은 기술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2015년 제정된 ‘삼차원프린팅산업 진흥법’은 총포ㆍ도검ㆍ화약류 및 마약류 등 사람의 생명ㆍ신체를 위협할 수 있는 물품 제조를 금지하고 있지만,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이 없어 ‘무늬만 규제’에 그친다. 3D 프린터용 총기 설계도만 소지해도 처벌하는 싱가포르 등 다른 나라와 대비된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신(新)기술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에 대비해 세부 규정을 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총기 부품을 해외에서 몰래 들여와 제작하는, ‘조립총’도 근절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6월 부산에서는 외국에서 구매한 총기 부품을 장난감이나 자동차 부품으로 속여 수입한 뒤 국내에서 조립한 일당이 적발됐다. 경찰이 압수한 총기류의 성능을 시험해 보니 진짜 총과 큰 차이가 없었다. 부품만 확보되면 개인도 해외사이트에 게시된 총기제작 방법을 따라 하기가 어렵지 않다. 실제 유튜브에 특정 단어를 검색하면 총기제작 전 과정을 상세히 묘사한 영상을 쉽게 볼 수 있다.
통계로도 불법 무기류 수입 시도는 증가 추세다. 2020년 정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관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총포ㆍ도검류 밀수 적발 건수는 2016년 2,044건에서 2019년 3,102건으로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
총탄의 경우 총기보다는 제작이 까다롭다. 부산에서 유령총을 만든 일당도 실탄 제조에 끝내 실패해 철수한 미군부대 인근에서 금속탐지기를 활용해 실탄을 찾으려 한 것으로 전해졌다. 물론 조잡한 형태의 총탄도 살상력은 충분하다. 오패산 사건 때 이용된 쇠구슬은 경찰관의 목숨을 앗아갔다.
전문가들은 기술의 발전은 피할 수 없는 만큼 정부가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감시ㆍ규제망을 촘촘히 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온라인에 떠돌아다니는 총기제작법 게시물을 확실히 차단하는 대책부터 서둘러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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