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마을도 폭격, 잘 알던 이웃 숨져” 우크라 피란민의 눈물

입력
2022.06.19 13:30
수정
2022.06.21 00:38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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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두 번 겪은 고려인 박마리나씨
피란민 토크 콘서트서 전쟁 참상 증언

우크라이나 고려인 피란민 박마리나(오른쪽)씨가 18일 경기 수원시청에서 열린 토크 콘서트에서 자신이 겪은 전쟁의 아픈 기억을 이야기하고 있다. 수원시 제공

우크라이나 고려인 피란민 박마리나(오른쪽)씨가 18일 경기 수원시청에서 열린 토크 콘서트에서 자신이 겪은 전쟁의 아픈 기억을 이야기하고 있다. 수원시 제공


“우크라이나 중부의 부모님 마을에 지난주 화요일, 러시아 전투기가 폭격을 했다고 해서 걱정이 많아요."

지난 2월 러시아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에서는 4달째 전쟁이 이어지고 있다. 전쟁을 피해 지난 5월 한국으로 온 고려인 박마리나(37)씨는 우크라이나 상황을 전하면서 끝내 눈물을 흘렸다.

수원지속가능발전협의회가 18일 수원시청에서 ‘우크라이나 고려인 피란민 토크 콘서트’를 열었다. 박씨는 "나도 알고 있던 이웃이 돌아가셨다”며 전쟁의 참화에 고통을 겪고 있는 자국민들 생각에 말을 잇지 못했다.

우크라이나에 사는 박씨는 두 번이나 전쟁을 겪었다. 도네츠크주에 살던 박씨는 2014년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친러 반군이 벌인 '돈바스 내전'으로 전쟁의 공포를 경험했다. 이 때의 두려움 때문에 박씨는 도네츠크주에서 720km 떨어진 수도 키이우로 이사했다.

하지만 안도의 한숨도 잠시. 8년 만에 또다시 전쟁의 공포는 박씨를 엄습했다. 박씨 남편 생일인 2월 24일 러시아가 침공한 것이다. 박씨는 "침공 나흘 뒤부터 거리에 총을 든 사람과 탱크가 보이기 시작했다"면서 "사이렌이 울리면 지하 대피소로 가서 길게는 이틀 동안 대피소에 머물러야 했는데, 너무 무서웠다"고 전쟁 발발 당시를 떠올렸다.

이대로 살 수 없다고 판단한 박씨는 이모와 사촌언니가 있는 한국으로 피란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딸을 데리고 5km 넘게 걸어 기차역으로 이동한 뒤, 국경을 넘어 폴란드로 대피했다. 폴란드에 한 달간 머물면서 비자 발급 등 준비를 마친 박씨는 전쟁 발발 70여 일 만인 지난 5월 4일 한국에 들어왔다. 그는 현재 경기도에 살고 있다.

박씨는 “어릴 때 할머니가 한국에 대해 많이 이야기를 해주셔서, 언젠가는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전쟁으로 한국에 올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그러면서 "우크라이나에 있는 고려인 동포들이 한국으로 피란 올 수 게 지원해 달라"는 당부의 말도 빼놓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에 거주하는 고려인은 17만6,000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토론회에 참석한 채예진 대한고려인협회 부회장은 “우크라이나 고려인 동포들은 폴란드, 루마니아 등 주변국을 비롯해 유럽 각지로 피란을 떠나고 있다”며 “앞으로 한국으로 피란 오는 동포도 다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유문종 수원시 제2부시장은 “전쟁으로 어려움을 겪는 피란민들에게 따뜻한 손길이 필요하다”며 관심을 부탁했다.



이종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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