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신, 학벌… 묻지도 따지지도 마시길

출신, 학벌… 묻지도 따지지도 마시길

입력
2022.06.13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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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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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쯤 막 담당하게 된 경제 부처의 장관 비서실 직원이 전화를 걸어왔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존칭은 생략한다.

직원: "(자기소개용) 이력서를 다시 보내 줘. 본적, 학교, 구체적으로."

필자: "개인 정보라 알리기 싫어. '지방 소재 일반고', 'OO년 4년제대 졸'이면 충분해."

직원: "장관이 화냈어. 제대로 알아 오라고. 사정 좀 봐줘."

필자: "그게 화낼 일? 전공, 경력, 취미는 꼼꼼히 적었잖아. 다른 출입처에도 똑같이 써냈어."

남들은 대수롭지 않게, 어떤 이는 자랑스럽게 알려 주는 정보를 애써 숨겼다. 유별나다 해도 괜찮다. 부끄러워서가 아니다. 고향과 모교를 사랑한다. 의지와 실력으로 입학한 대학에 대한 자긍심은 드높다. 그 간판이 인생 앞길을 열어주리라는 기대도 학창 시절 내내 품고 살았다. 바람대로 취직했다. 'A대 몇 명, B대 몇 명, C대 몇 명 합격'이라는 흔한 셈법에 안주했다. 알량한 특권 의식의 싹이었다.

기자 초년병 때는 동향, 동문 정보를 기웃거렸다. 같은 간판을 공유하는 취재원이 자잘한 정보라도 하나 더 챙겨주고, 내 편이 될 것이라고 여겼다. 실제 그렇기도 했다. 경력을 쌓아 갈수록 달리 깨달았다. 세상은 경청해야 할 다양한 조건의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고 있다는 사실을, 더구나 기자라면 특정 집단이나 조건에 매여서는 안 된다는 당위를, 누군가 바꾸지 않으면 여전히 지연 학연으로 얽혀 있을 우리 사회의 미래를.

그 무렵부터 출신, 학벌 같은 조건이 평생 능력으로 둔갑하는 세태를 거부했다. '끼리끼리' 대오에서 자진 철수했다. 동향을 이유로 "우리가 남이가"라고 물으면 "남이죠"라고 대꾸했다. 동문임을 짐작한 취재원이 "저는 A대 O학번"이라고 떠보면 "네, 그렇군요" 식의 무관심을 돌려줬다. 더는 "아이쿠 선배님, 말 놓으세요" "어머나 후배구나, 말 놓을게" 따위 하지 않았다. 지연 학연을 내건 모임엔 가지 않았다. '출신 간판'에 서식하는 기대는 내려놓고 편견은 비웠다.

돌이켜보면 지연 학연에 기대 작성한 기사는 기억이 희미하다. 발로 뛰고 각양각색 사람들을 격의 없이 만나 쓴 기사들이 '인생작'이었다. 인맥은 단절과 고정이 아닌 연결과 확장이다. 저수지가 아니라 바다로 흘러가는 강이어야 한다. 공자는 사람을 만나고 평가할 때 '불보기왕(不保其往)'이라고 했다. '그(基) 지난(往) 것(과거)을 (가슴에) 담지(保) 않는다(不).' 공자는 나쁜 조건(출신)을 예시로 들었지만 요즘 사회로 따지면 양극화와 불공정을 부채질하는 '좋은 조건' 역시 해당되리라.

그래서 5년 전쯤 뜨기 시작한 블라인드 채용이 반가웠다. 학벌 지역 연줄 등은 보지 않고 오직 업무 경험과 실력만으로 뽑겠다는 취지에 공감했다. 세상이 시나브로 변하고 있다는 신호로 읽었다. 문제점은 보완되리라. 그 시작이 일상도 바꾸리라. 우리 아이들이 조건 때문에 좌절하고 고통받고 차별당하는 세상을 서서히 벗어나리라.

웬걸, 자카르타 특파원 3년 임기를 마치고 돌아와 예전 보직을 맡고 보니 거의 달라진 게 없다. 여전히 출신 지역과 출신 학교를 캐묻는다. 그 정보만 알면 상대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고 믿는 걸까. 심지어 집주소까지 묻는다. 알려드릴 수 없다. 부디 양해해 주시라.

고찬유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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