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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 고군분투, 정부는 불구경...갈팡질팡 K반도체

입력
2022.06.10 04:30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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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시스템 반도체 1위 청사진 밝혔지만
3년 지난 현재 파운드리, AP 모두 정체
"메모리 성공 전략서 벗어나야...대형 M&A도 필요"
공장 삽 뜨는 데 수년 걸려...각종 규제에 발목

지난달 25일 반도체 클러스터가 들어설 경기 용인시 원삼면 일대에 경작 금지 안내문이 게재돼 있다. 이승엽 기자

지난달 25일 반도체 클러스터가 들어설 경기 용인시 원삼면 일대에 경작 금지 안내문이 게재돼 있다. 이승엽 기자


"인재 면에서 일본이나 미국은 대만을 이길 수 없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TSMC에 매우 강력한 라이벌이다."

모리스 창 TSMC 창업자


모리스 창 TSMC 창업자는 지난 몇 년 동안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삼성전자에 대한 경계심을 숨기지 않았다. 메모리 반도체 신화를 쓴 삼성전자도 TSMC와 마찬가지로 잘 훈련받고 실력을 갖춘 반도체 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역시 2019년 4월 2030년까지 133조 원을 투자해 메모리에 이어 시스템 반도체 시장까지 1위에 오르겠다는 청사진을 밝혔다.

2010년대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①저장 기능을 수행하는 메모리는 삼성전자, ②두뇌 역할을 하는 시스템 반도체는 인텔이 두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스마트폰 시대가 시작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인 애플리케이션(AP) 개발 업체들이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전기차 등 반도체가 들어가는 제품군도 다양해지면서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등 시스템 반도체 시장의 영역이 크게 넓어졌다.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시스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70%에 달한다. 메모리 최강자 삼성전자의 시스템 반도체 1위 도전 선언이 업계에 충격을 가져다준 이유기도 하다.



"메모리와 파운드리, 업 달랐다"...삼성의 전략미스?

삼성전자 AP·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삼성전자 AP·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하지만 3년이 지난 현재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AP 분야 모두 힘겨운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모바일 AP 시장 점유율은 2019년 12%에서 2020년 9.7%, 지난해 6.6%로 하락했다. 파운드리도 1위 TSMC와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는 올해 TSMC의 점유율이 지난해보다 3%포인트(P) 상승한 56%를 기록한 반면 삼성전자는 2%P 하락한 16%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반도체 업계에선 삼성전자의 시스템 반도체에 대한 접근법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한다. 소품종 대량 생산에 최적화된 메모리의 업무 방식을 다품종 소량 생산의 시스템 반도체에 접목하다 보니 성과나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이다. 최근 경계현 삼성전자 DS 부문장(사장)도 임직원과의 대화에서 "메모리와 파운드리는 업의 형태가 다르다. 그 차이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메모리는 대량 생산을 먼저 하고 나서 판매처를 갖추는 반면 파운드리는 일단 주문을 받아야 공장에서 생산하는 시스템으로 분위기가 다르다"며 "고객 확보, 마케팅 전략 등 처음부터 다른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리더십 부재도 적기에 최적의 전략을 펴는 데 발목을 잡았다. 대만 TSMC, 미국 인텔 모두 파운드리 분야에 수십조 원의 투자 계획을 잇따라 발표하며 점유율 확대에 나서고 있다. 반면 삼성전자가 부족한 시스템 반도체 설계 기술을 보충할 방법 중 하나로 대형 인수합병(M&A)이 꼽혔지만, 이재용 부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길어지면서 제때 결단을 내리기 쉽지 않았다.

삼성전자가 고객의 신뢰를 잃고 있다는 점도 뼈아프다. TSMC에 주문이 몰리자 어쩔 수 없이 삼성전자를 택하는 고객이 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4나노미터(㎚, 10억분의 1미터)공정의 모바일 AP 양산을 삼성전자에 맡겼던 미국 퀄컴은 낮은 수율(양산품 비율) 문제로 제품 일부를 TSMC로 돌린 데 이어, 3나노미터 공정에선 전량 TSMC에 생산을 의뢰했다.



3년째 첫 삽도 못 뜬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규제에 발목 잡힌다"

지난달 25일 반도체 클러스터가 들어설 경기 용인시 원삼면 일대에 경작 금지 안내 플래카드가 휘날리고 있다. 이승엽 기자

지난달 25일 반도체 클러스터가 들어설 경기 용인시 원삼면 일대에 경작 금지 안내 플래카드가 휘날리고 있다. 이승엽 기자

기업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동안 정부는 멀리서 불구경만 해왔다. 2019년 부지 선정 이후 3년 넘게 첫 삽도 뜨지 못한 경기 용인시 반도체 클러스터가 대표 사례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SK하이닉스가 120조 원을 투자해 용인시 원삼면 일대 414만㎡에 생산 공장 4기 등을 짓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한국일보가 지난달 25일 오전 경기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의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 예정지를 가보니 제대로 된 보상을 요구하는 주민들의 수백 개의 현수막이 도로를 따라 빼곡히 붙어 있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공사가 한창이어야 하지만, 논이었던 부지 입구에 보상이 끝난 토지는 파종을 금지한다는 '경작 금지' 안내문만 휘날리고 있었다.

하지만 각종 규제에 발목 잡히면서 착공이 다섯 차례나 연기됐다. 우선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수도권 공장 총량제의 예외 사례로 인정하는 정부 심의에만 2년이 걸렸다. 용수와 방류수 문제도 해당 지방자치단체가 달라 엇박자를 냈다. 공장에 공급되는 용수는 경기 여주시에서 받고, 방류수는 경기 안성시를 통과하게 되면서 농민들의 반발과 추가 환경영향평가 실시 등으로 6개월 동안 공사가 또 미뤄졌다.

여기에 제대로 된 보상을 요구하는 주민들의 반발이 이어지면서 강제 수용 절차까지 돌입하게 됐다. 평생을 일궈 온 터전을 송두리째 빼앗기게 생긴 주민들 입장에서도 두 손 놓고 있는 정부와 지자체가 얄미울 수밖에 없다. 용인시 원삼면에서 태어나고 자란 경동만(66)씨는 "울며 겨자먹기로 보상을 받았지만 이 돈으로는 다른 곳에 땅을 사서 농사를 이어갈 수 없는 상황"이라며 "정부나 용인시나 주민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거나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기술 초격차로 신뢰 회복·정부 차원의 지원 급선무"

윤석열(가운데) 대통령과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0일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해 이재용 부회장과 함께 반도체 생산라인을 둘러보며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평택=서재훈 기자

윤석열(가운데) 대통령과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0일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해 이재용 부회장과 함께 반도체 생산라인을 둘러보며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평택=서재훈 기자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메모리에서 그랬듯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도 경쟁 회사를 압도할 수 있는 기술 초격차를 입증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를 위해 삼성전자는 올해 상반기 중으로 세계 최초 차세대 기술인 게이트올어라운드(GAA)를 적용한 3나노미터 제품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TSMC보다 먼저 GAA를 도입한 것으로, 전력 효율, 성능, 설계 유연성 측면에서 기존 기술에 우위를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를 위해선 기업 혼자서 뛰어서는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만 정부가 기업의 애로사항을 듣고 전격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처럼 우리 정부도 기업의 든든한 아군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7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 출신인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게 반도체 강의를 지시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 등 비경제부처 장관에게도 "반도체 과외를 받아서라도 공부하라"고 지시해 주목 받았다. 국가 안보 자산으로 꼽히는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속도감 있게 키우기 위해선 전 부처가 나서야한다는 주문으로 해석됐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이번에 삼성전자가 TSMC보다 먼저 발표하는 3나노미터 반도체를 시작으로 TSMC와 동등하거나 앞선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고객에게 보여줘야 한다"며 "인허가 규제를 완화하고 공장 부지를 포함한 용수, 전류, 폐수 처리 등 지자체가 나서기 어려운 기반 시설 문제를 중앙 정부 차원에서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용인= 이승엽 기자
안하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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