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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가 독립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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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칸디나비아 국가에는 주로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3국이 든다. 반도를 지리적으로 공유한 핀란드는 러시아 혁명 전 제정 러시아 식민지(핀란드 공국)였고, 언어도 인도유럽어족인 3국과 달리 우랄어족이다.
11세기 초 스웨덴 정복군주 크누트는 세 나라(스웨덴은 일부)와 잉글랜드까지 ‘북해제국’으로 묶어 통치했고, 14세기에는 3국 귀족이 연대해 ‘칼마르 동맹’이라는 연합국가를 세우기도 했다. 물론 덴마크가 주도권을 쥐고 있었지만 동맹은 약 150년간 존속했다. 1차 세계대전 직전 3국 화폐(krona) 통합도 시도됐다. '삼국통일'을 추구하는 범스칸디나비아(주의) 운동이 이런 역사와 문화적 정체성 위에 있다.
물론 그 역사가 늘 순탄친 않았다. 약체 노르웨이의 시련이 컸다. 노르웨이는 14세기 말부터 약 400년 동안 덴마크 국왕의 통치를 받았고, 나폴레옹 패전 후 프랑스를 편들었던 덴마크는 1814년 킬(Kiel)조약으로 노르웨이를 잃었다. 이후 노르웨이는 스웨덴 국왕의 지배하에 있었다. 두 독립국이 한 국왕의 통치를 받는 형태를 제국-식민지와 구분해 동군연합(同君聯合, Personal Union)이라 부른다. 노르웨이는 독자적 헌법과 의회 등을 갖추고 있었지만, 외교·군사권은 스웨덴 국왕에게 양도한, 준식민지였다. 독립운동은 19세기 내내 이어졌다.
1902년 노르웨이 의회는 해외 영사업무를 양도받기 위해 스웨덴 측과 여러 차례 협의하고, 독자적 법률도 제정했지만 번번이 스웨덴 국왕의 반대로 무산됐다. 의회는 1905년 6월 7일 만장일치로 ‘연합’ 해산을 결의했고, 덴마크 국왕은 국민투표를 요구했다. 그해 8월 13일 투표에서 남성 유권자 중 압도적 다수(36만8,208표)가 해체를 원했고, 투표권이 없던 여성들도 서명으로 동조했다. 군대까지 동원한 일촉즉발의 대치 속에 양국은 9월 협상을 타결 지었고, 스웨덴 국왕은 공식적으로 노르웨이 왕좌에서 내려왔다. 오늘은 노르웨이 연합 해체의 날(독립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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