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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100일] 힘 못쓰는 유엔, 국제기구 '무용론' 자초

입력
2022.06.03 05:20
수정
2022.06.03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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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우크라 침공에도… 안보리 ‘철군 요구’ 결의안 불발
유엔 산하 ICJ 철군 선고했지만… 러에 거부권
위협 느낀 세계 각국 '자력구제', 군사동맹 강화로
강대강 대결 구도에 군비경쟁·갈등 고조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지난 4월 5일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우크라이나 민간인 희생자 시신을 찍은 사진이 화면에 비치고 있다. 뉴욕=AFP 연합뉴스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지난 4월 5일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우크라이나 민간인 희생자 시신을 찍은 사진이 화면에 비치고 있다. 뉴욕=AFP 연합뉴스

유엔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무용론(無用論)'을 자초하고 있다. 유엔의 6개 주요 기구 중 유일하게 회원국에 이행 의무가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의사결정 구조의 한계가 근본 원인으로 지적된다. 이에 유럽 각국은 지역 군사동맹을 강화하는 자구책을 찾고 있지만 결국 군사적 갈등만 고조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도 유엔 안보리는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의 반대로 철군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지 못했다. 이후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안보리를 우회해 지난 3월 유엔총회에서 러시아의 즉각 철군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는 데 그쳤다. 안보리는 지난 6일(현지시간)에야 ‘침공’이 아닌 ‘분쟁’이란 표현만 써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지지한다”는 빈약한 내용의 성명을 채택했다.

유엔 산하 국제사법재판소(ICJ)도 무기력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3월 ICJ는 러시아에 우크라이나에서 군사작전을 중단할 것을 선고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선고를 무시했다. ICJ의 선고를 거부할 경우 안보리에 회부돼 더 강한 제재를 내릴 수 있지만, 이 역시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에 거부권이 있어 실효성이 없다. 최근 잇따른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도 유엔 안보리는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와 중국의 반대로 어떤 결의안도 채택하지 못하고 있다.

수만 명이 죽고 전쟁에 황폐화하는 나라를 구제하지도, 국제적으로 안전을 위협하는 나라를 벌하지도 못하는 국제기구의 현실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유엔 안보리의 구조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로 변주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승전국인 5개 안보리 상임이사국(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이 임기 제한 없이 거부권을 갖는 틀을 바꿔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 역시 가능성은 낮다. 이를 위해선 유엔 헌장을 개정해야 하는데, 이 또한 안보리 상임이사국은 거부권을 갖고 있다. 당장 러시아가 반대하겠지만, 미국 등 다른 상임이사국도 바꿀 의사가 없긴 마찬가지다.

유엔에 의지할 수 없다는 사실만 재확인하면서 각국은 안보 영역에서는 자력구제뿐이라는 인식만 강해졌다. 1814년부터 200년 넘게 군사적 비동맹을 유지해온 스웨덴이나, 74년 중립국이던 핀란드가 잇따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에 가입을 신청한 것이 단적인 예다. 덴마크도 1일(현지시간) 국민투표를 거쳐 유럽연합(EU)의 공동방위 정책에 참여하기로 했다. 결국 군사동맹 확대라는 강대강 대결을 택하면서 군비 경쟁은 심화되고 갈등은 고조되는 양상으로 흐르면서 국제질서는 혼탁해지고 있다. 유엔이 자초한 결과다.

김청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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