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EU 단일대오… 러 석유금수 '타협안' 무산?

입력
2022.05.30 18:19
수정
2022.05.30 22:29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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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유관 예외' 절충안 내놨지만 합의 불투명
"대러 6차 제재, 통째 연기 방안까지 고려 중"
합의안 도출 실패할 경우 EU 분열 우려 커져

5일 헝가리 부다페스트 남쪽 싸즈헐롬버터 마을 정유소에서 헝가리 대표 정유회사인 '몰' 직원이 송유관을 점검하고 있다. 부다페스트=AFP 연합뉴스

5일 헝가리 부다페스트 남쪽 싸즈헐롬버터 마을 정유소에서 헝가리 대표 정유회사인 '몰' 직원이 송유관을 점검하고 있다. 부다페스트=AFP 연합뉴스

대(對)러시아 경제 제재를 두고 유럽연합(EU)이 흔들리고 있다. 러시아 '돈줄'인 원유 금수 조치를 두고 연일 어깃장을 놓는 헝가리를 달래기 위해 타협안까지 꺼내 들었지만, 합의가 한 달 가까이 표류하고 있다. 결국 EU의 대러 제재안이 무기한 연기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29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EU 특별 정상회의(30~31일)를 하루 앞두고 27개 회원국 대사들이 러시아산(産) 원유의 단계적 금수 조치를 논의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제재안은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가 이달 초 러시아산 원유와 석유 제품 수입 중단이 포함된 대러 6차 제재안을 제안한 이후 각국 EU 대사와 외무장관이 연일 회의에 나섰지만 지금까지 채택하지 못했다.

발목을 잡은 건 헝가리다. 제재안이 통과되려면 27개 회원국의 만장일치 동의가 필요한데, 원유 수입 65%를 러시아에 의존하는 헝가리가 자국 경제에 미칠 타격을 이유로 거부해왔다. 집행위는 해상으로 수입되는 러시아산 원유만 제재하고 드루즈바 송유관을 통해 들여오는 경우는 허용하는 절충안까지 내놓았다. 드루즈바 송유관은 헝가리가 러시아에서 원유를 수입하는 주요 통로다. 헝가리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기보다 회원국 간 합의를 이루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한, 이른바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 조치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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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초전’ 성격의 회원국 대사 회의만으로 대러 6차 제재안 채택 무산을 예단하긴 이르다. 각국 정상들이 직접 머리를 맞댈 경우 정치적 결단이 나올 거라는 일말의 기대감도 있다. 이날 로이터통신은 정상회의를 앞두고 “송유관을 통한 원유 공급은 일시적으로 예외로 둔다”는 내용이 담긴 합의문 초안이 작성됐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다만 여전히 일부 회원국이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반발하고, 헝가리 역시 EU가 8억 유로(약 1조 700억 원) 상당 지원금을 지급하는 게 우선이라고 주장해 최종 합의 여부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정상회의에서조차 합의안 도출에 실패할 경우 서방의 대러 제재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전쟁 출구전략을 두고 “우크라이나 영토 일부를 양보해서라도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는 주화파(독일 프랑스 등)와 러시아가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주전파(폴란드 에스토니아 등)로 갈리는 상황에서 제재 실패가 ‘회원국 분열’이라는 불씨에 기름을 부을 수 있다는 얘기다. 블룸버그통신은 “EU가 헝가리를 설득하지 못하면 결속력에 중대한 타격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럽의 단합은 이미 부서지기 시작했다(로베르트 하벡 독일 부총리)”는 암울한 분석까지 나왔다.

EU가 외형적으로라도 단일대오를 유지하기 위해 대러 제재안 채택을 연기할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30일 "정상들이 이번 회담에서 제재안을 채택하는 대신, 러시아산 석유를 계속 수입하는 국가와 그러지 않은 국가 간 공정한 경쟁을 위해 새로운 해결책 마련을 주문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실제로 이날 몇몇 정상들은 제재안 채택을 연기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카야 칼라 에스토니아 총리는 회담 전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오늘 합의에 이를 것 같지 않다”며 “6월 23~24일 예정된 다음 정상회담 때까진 합의할 수 있도록 해보겠다”고 말했다. 알렉산드르 더크로 벨기에 총리도 “이건 쉬운 결정이 아니다”면서 “우리가 수일, 수 주 내에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덧붙였다.

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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