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적 불안에 러 '어깃장'까지… 아프리카, 유럽 에너지 '희망' 될 수 있나

입력
2022.05.17 04:3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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伊, 알제리와 가스 수입 40% 확대
EU, 나이지리아, 앙골라에 '러브콜'
국가 간 갈등, 공급 늘릴 여력 적어
아프리카-러시아 오랜 친분 걸림돌

지난달 14일 튀니지 수도 튀니스에서 동쪽으로 100㎞ 떨어진 엘하우아리아에서 알제리~이탈리아를 연결하는 천연가스관의 튀니지 구간을 관리하는 직원이 가스관을 점검하고 있다. 엘하우아리아=AFP 연합뉴스

지난달 14일 튀니지 수도 튀니스에서 동쪽으로 100㎞ 떨어진 엘하우아리아에서 알제리~이탈리아를 연결하는 천연가스관의 튀니지 구간을 관리하는 직원이 가스관을 점검하고 있다. 엘하우아리아=AFP 연합뉴스

유럽 각국이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에 맞서 아프리카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지만, 아프리카가 러시아를 대체하지는 못할 거라는 회의론이 커지고 있다. 특유의 지정학적 불안으로 생산ㆍ공급이 출렁일 공산이 크고, 냉전시대부터 유대관계를 쌓아온 러시아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 유럽의 기대만큼 ‘믿음직한 에너지 지원군’이 되긴 어렵다는 분석이다.

16일(현지시간) 영국 BBC방송 등을 종합하면 ‘탈(脫)러시아산 에너지’에 나선 유럽 각국은 아프리카에 구애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이탈리아가 대표적이다. 연간 천연가스 수입량의 40%(290억㎥)를 러시아산에 의존해온 이탈리아는 ‘에너지 독립’을 선언하고 발 빠르게 움직였다.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는 지난달 북아프리카 알제리와 2023~2024년 천연가스 수입을 연간 최대 90억㎥ 늘리는 내용의 새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지난해 알제리산 공급 물량이 이탈리아 전체 수입량(760억㎥)의 28%(210억㎡)였던 점을 감안하면, 무려 40%나 늘어난 셈이다. 앙골라와 콩고민주공화국, 모잠비크와도 천연가스 추가 수입 논의에 나선 상태다.

유럽연합(EU)도 바빠졌다. EU는 올해 안에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를 기존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인다는 방침을 세웠다. 부족분을 채우기 위해 눈을 돌린 곳 역시 나이지리아, 앙골라, 세네갈, 남수단 등 아프리카 국가다. 모두 천연가스 잠재 매장량은 많지만 아직 대대적인 개발에 나서지 않은 국가들이다. BBC는 “그간 나이지리아의 천연가스 주요 종착지는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 정도였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발생 이후 유럽 국가들의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간 유럽은 정정불안과 독재정권 지원 문제 등을 이유로 아프리카산 에너지 수입을 꺼려왔다. 글로벌 에너지 시장분석업체 라이스타드에너지는 전날 “(유럽의) 아프리카 프로젝트는 높은 개발 비용과 낙후한 재정 시스템, 지상에서의 위험 등으로 지연돼 왔다”며 “최근 신호는 (유럽의) 투자 전략 전환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10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알제리 외무장관과의 회담을 위해 알제리 수도 알제의 한 회의장으로 향하고 있다. 알제=타스 연합뉴스

10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알제리 외무장관과의 회담을 위해 알제리 수도 알제의 한 회의장으로 향하고 있다. 알제=타스 연합뉴스


러시아의 에너지 위협이 이런 아프리카 투자 전략 전환의 계기가 된 것은 자명하지만 아프리카의 ‘몸값 상승’에 대한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러시아발(發) 에너지 불안 때문에 불가피하게 공급망 다변화에 나서긴 했지만, 그간 문제로 꼽혔던 우려 요인 역시 그대로인 탓이다.

지난해 알제리가 모로코와의 갈등 속에 가스관을 걸어 잠그면서 남유럽으로 수출되는 천연가스 양이 급감한 것이 대표적이다. 오랜 ‘앙숙’ 관계인 두 국가의 갈등은 지난해 산불 방화 책임론을 두고 표면화했다. 우와 오사디예 FBN퀘스트증권 수석 리서치 부사장은 “당시 스페인으로 가는 가스량이 연간 4억8,000만㎥에서 2억5,000만㎥로 급감했다”고 설명했다. 양국의 불편한 관계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중단 사태는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이들 국가가 단기간에 공급량을 늘릴 여력이 있는지도 미지수다. 아프리카 전문매체 올아프리카는 “나이지리아 천연가스 매장량은 원유 매장량의 5배 이상이지만 그간 정부는 효율적으로 시추하지 못했다”며 열악한 인프라와 투자 부족 등을 이유로 꼽았다.

아프리카의 ‘러시아 눈치보기’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러시아는 냉전시대 전후부터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에 해방 운동을 지원하는 등 50년 넘게 공을 들여 친분을 쌓아왔다. 아프리카 국가들이 러시아를 제치고 유럽의 손을 들어줄 수 없는 이유다. 3월 열린 유엔 긴급특별총회에서 아프리카 24개국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규탄 결의안을 거부한 것은 양측의 관계를 가늠할 수 있는 단적인 예다.

러시아도 아프리카 관리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10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알제리와 오만 등을 잇따라 방문해 “우크라이나 영토 문제와 현재 사태에 대한 객관적인 입장에 감사를 표한다”고 밝혔다. 해당 국가들은 “(유럽 국가들의)직접적인 증산 압박은 없었다”고 선을 그었지만, 외신들은 러시아가 아프리카 주요국에 추가 증산을 차단하려 ‘어깃장’을 놓았다고 해석했다. AP통신은 “(아프리카 국가들은) 더 많은 천연가스 수출을 원하는 유럽 국가와 오랜 유대관계를 유지해온 러시아 사이에서 난감한 입장에 처했다”고 분석했다.

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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