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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합의'라는 모호한 핑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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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성소수자 인권 진전의 대표적 두 장애물은 종교와 정치다. 종교가 성소수자를 부정하는 명분은 교리, 엄밀히 말하면 교리 해석이다. 하지만 성공회를 비롯한 다수 기독교단이 이미 성소수자 인권 대열에 잇달아 동참하고 있고, 프란치스코 교황도 2020년 다큐멘터리 '프란치스코'에서 "동성애자도 가족을 이룰 권리가 있다"며 동성 결혼의 대안인 '시민결합(civil union)'을 공개 지지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도 세계주교회의(세계주교시노드)를 앞두고, 이달 초 성소수자 신자들을 잇달아 만나 의견을 수렴했다. 이런 엇갈림과 변화 자체가 신학 교리 해석의 탄력성의 방증이다.
성소수자 인권에 가장 적극적인 건 불교계다.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는 여러 차례 성소수자 차별 반대 의사를 공식 표명했고, 지난해 말 퀴어축제에 참가해 자비의 품을 활짝 펼쳤다.
반면 정치가 법·제도적 성소수자 차별 장치를 걷어 내는 데 반대하거나 머뭇대는 명분은 이른바 '사회적 합의'다. 시민 다수가 차별·배제 철폐에 아직 동의·합의하지 않고 있다는 주장 혹은 판단이다. 하지만 누구도 '사회적 합의'의 실체나 근거를 제시한 적은 없다. 이런 명분은 거꾸로 시민(유권자) 다수가 동의하면 차별금지법 제정도 가능하다는 의미다. 적어도 주류 정치권은 동성애자 인권의 진전이 타락은 아니며 바람직하기도 하지만 아직 때가 아니라고 판단하는 모양이다. 그들이 말하는 '때'란 아마도 정치 자금이나 득표율 등 이해의 변곡점을 가리킬 것이다. 인권·정의를 숫자와 이해의 저울로 재는 행위는 종교 교리의 명분을 내세우는 것보다 더 천박하고 옹색하다.
5월 17일은 '국제 성소수자 혐오(차별) 반대의 날'이다. 1990년 이날 세계보건기구(WHO)가 동성애를 '국제질병분류'에서 삭제한 것을 기념해 프랑스의 한 인권운동가가 제안해 국제사회가 기념하는 날이다. 사회적 합의의 저울대에 놓인 것은 차별금지법이 아니라 의회정치, 특히 다수당인 민주당의 값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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