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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 사자 같던 ‘월드스타’… 영원한 휴식 누리시길

입력
2022.05.11 04:30
22면

7일 세상을 떠난 영화배우 강수연의 영정 사진. 故 강수연 배우 장례위원회 제공

7일 세상을 떠난 영화배우 강수연의 영정 사진. 故 강수연 배우 장례위원회 제공

강수연에게는 영화배우라는 호칭이 어울렸다. 세 살 때부터 텔레비전 브라운관에 나왔으며 성인이 될 무렵부터 영화에 전념한 그는 TV의 좁은 사각이 성에 차지 않는 굉장한 기운을 지닌 배우였다. ‘씨받이’(1987), ‘아제 아제 바라아제’(1989)로 각각 베니스영화제, 모스크바영화제 최우수여자배우상을 받은 그는 한국 영화 최초로 ‘월드스타’라는 수식을 평생 달고 다녔지만 2000년대 이후에는 영화배우로서보다는 주로 부산영화제를 물심양면 지원하는 유명인으로 대중에게 기억됐다.

강수연은 충무로라 불리는 전통적인 영화산업의 자장 안에서 성장하고 활동한 배우다. 임권택에서 곽지균, 장길수, 박광수, 장선우, 정지영, 이명세에 이르기까지 그는 당대의 유능한 감독들과 골고루 작업했다. 정서적으로 그는 자신보다 위 세대의 영화인들과 가까웠지만 그 자신은 변화에 늘 열려 있다고 생각했다. 생전에 그는 “사람들은 나를 1980년대의 이미지로만 대한다. 그렇지만 나는 늘 변해 왔다. 아역배우에서 하이틴 배우로, 다시 성인 배우로. 5년 후에 어떻게 남을까를 고민하지 않는다. 내 소망은 70대의 나이에도 캐서린 헵번이 열연했던 ‘황금 연못’(1981)과 같은 영화에서 연기하는 것이고, 연기 생활이 끝났을 때도 괜찮게 생각할 수 있는 작품 두세 편이 있었으면 하는 것뿐”이라고 다짐하곤 했다.

늘 현재와 미래를 말하고 싶어했던 강수연은 사람들이 그를 과거의 아이콘으로 기억하는 것을 불편해했다. 누군가의 대화에서 상대방이 꺼낸 화제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조짐이 보이면 그의 얼굴은 냉랭해졌다.

그는 숱한 영화에서 다양한 연기를 시도했지만 사람들은 자신을 고정된 이미지로 보는 것 같다고 답답해했다. 그의 기억에 따르면, 아역 배우에서 하이틴 배우로 옮겨 갔을 때 사람들은 언니 교복을 입고 연기하는 것 같다고 놀려댔다. 고교 3학년 때 ‘W의 비극’(1985)으로 처음 성인 연기에 도전했던 그는 앳된 얼굴 때문에 여전히 그를 하이틴 배우로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을 견뎠다. 성인이 돼서 출연한 변장호의 ‘감자’(1987)와 같은 영화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그가 미성년자인 줄 알고 있었다고 그는 기억한다. ‘씨받이’에서의 씨받이 옥녀 역과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1987)에서의 매춘부 역으로 강수연은 비로소 성인 연기자로 인정받았다. 강수연의 관능적인 이미지는 그후 ‘됴화’(1987)와 같은 사극 영화로도 이어졌고 ‘고래 사냥 2’(1985),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1987) 등의 영화에서는 또래의 청춘을 연기함으로써 아이돌 배우로 떠올랐다.

강수연은 자신의 강한 이미지가 시대적 분위기의 요구와 어쩔 수 없이 맞물려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때는 위 세대의 여성들이 대개 다 힘들게 살았을 때니까 억세고 강인하고 압도하는 그런 이미지가 내게 요구됐다.” 강수연의 그 강한 이미지는 때로는 도발적인 관능으로, 때로는 천방지축인 청춘의 에너지로,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체제와 맞서 단독자로 살 수 있는 강한 인간상으로 표출됐다. 삶의 굴곡에 지쳐 가라앉아 꺼질 것 같고 생활에 밀착해 있는 듯한 모습이 ‘아제 아제 바라아제’와 같은 영화에서 드물게 꺼내지는 사이에 센 배우 강수연의 포장된 카리스마는 굳어졌다. 강수연은 어느새 어떤 굴곡 많은 삶을 산 여인을 연기해도 강수연으로 남았다. 아무개 역의 강수연이 아니라 강수연이 연기하는 아무개 역이 됐다.

팬시한 이미지의 외모를 지닌 더 젊은 배우들 사이에서 날이 서 있는 강수연의 이미지는 시대를 끌어안고 가기에는 부담스러운 것이 됐는지도 모른다. ‘서클’(2003)의 개봉 직후 그와 인터뷰를 했던 나는 그가 “나도 풀어버리고 싶다. 진짜로. 누군가가 나의 기존 이미지를 무너뜨렸으면 좋겠다”고 중얼거리는 걸 들었다. 어떤 영화에서도 그는 사자가 우리 안에 갇혀 있는 듯한 기운을 뿜어낸다. 그 누군가 강수연에게 뛰어놀 정글과 초원을 마련해 줬다면 강수연은 한국 영화계에 그만한 보답을 했을 것이다. 사석에서도 강수연은 좌중을 들뜨게 만드는 기운을 지닌 사람이었지만 날이 선 말을 꺼낼 때도 매력적인 웃음을 잃지 않았다. 강수연의 에너지는 사실 굉장한 내면의 피로를 감추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생전 그는 다시 태어나는 것이 허락된다면 ‘게으르고 편하게 살고 싶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

이제 영원한 휴식을 누리게 된 강수연씨, 안녕히 가십시오.

김영진 명지대 예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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