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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워라 흑산도 아가씨… 서러워라 열두굽이 세상 끝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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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몰래 서러운 세월은 가고, 물결은 천 번 만 번 밀려 오는데, 못 견디게 그리운 아득한 저 육지를, 바라보다 검게 타버린 검게 타버린, 흑산도 아가씨”. 정두수의 가사에 박춘석이 가락을 붙이고, 이미자의 목소리로 애절함이 더해진 ‘흑산도 아가씨’의 노랫말이다. 1966년 발표돼 56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교통 여건만 따지면 흑산도의 ‘서러운 세월’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목포 90㎞, 쾌속선으로 2시간이 걸린다. 이마저도 기상 상황에 따라 연평균 70일가량은 운항하지 못한다. 정기 점검과 기타 이유를 합하면 연 100일 가까이 육지와 단절되는 섬이다.
흑산도는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의 중심이다. 면적은 약 20㎢로 서울 여의도의 7배 정도다. 섬 중간에 우뚝 솟은 문암산(405m)를 중심으로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어 체감 면적은 훨씬 넓다. 동쪽에 영산도, 북쪽에 다물도와 대둔도, 서쪽에 장도와 홍도 등의 유인도가 있고, 인근에 흩어진 100여 개의 작은 섬을 합쳐 흑산군도라 부른다. 남쪽으로 직선거리 70㎞ 넘게 떨어진 가거도까지 흑산면이니 면 단위로는 전국에서 가장 넓다.
전체 주민 2,100명가량인 흑산도는 3개의 큰 마을로 구분된다. 섬 북쪽 흑산항을 사이에 두고 진리와 예리마을이 자리 잡았고, 남쪽에 사리마을이 위치한다. 섬 여행은 해상 바위 절경을 즐기는 유람선 관광(1시간 40분)도 있지만, 택시 관광이 일반적이다. 흑산항에서 시계 반대방향으로 약 26㎞ 일주도로를 한 바퀴 돌아오는 방식이다. 4인 기준 6만 원(추가 인당 1만 원)으로 넉넉잡아 2시간이 걸린다. 섬에 7대 있는 택시는 모두 7인승 이상의 승합차량이다. 택시기사가 가이드 역할을 겸한다.
흑산항을 출발해 진리1구와 2구 마을 사이 낮은 언덕에 ‘신들의 정원’이 있다. 일부러 가꾼 정원이 아니라 마을의 당집과 당숲이다. 매년 정월 올리던 당제가 중단된 지 20년이 넘었다니 이제 떠받드는 사람 없이 신들만 남은 정원이다.
두 개의 당집은 안내판에 그려진 것보다 작고 초라한데, 도로 가의 진리당과 해변 끝의 용신당까지 깔끔하게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된 초령목을 비롯해 동백나무 후박나무 담팔수 등 상록활엽수가 그늘을 드리웠고, 바닥에는 시누대와 석위 등이 군락을 이뤄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약 10분만 투자하면 개인 정원처럼 누릴 수 있다. 바로 옆은 섬에 하나밖에 없는 배낭기미해수욕장이다. ‘배낭기미’는 배를 끌어올려 해초를 제거하고 수리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옛 조선소인 셈인데, 작고 한적한 해변에 물새만 쉬고 있다.
신들의 정원처럼 버려진 종교시설은 또 있다. 진리 2구 마을 뒤편 도로변에 무심사 절터가 있다. 전각은 모두 사라지고 네모반듯한 축대 위에 팽나무 한 그루가 보기 좋게 자라고 있다. 나무 밑동의 뿌리가 건물 부재로 추정되는 석물을 단단히 움켜 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나마 온전하게 남아 있는 삼층석탑으로 미루어 신라 말이나 고려 초의 사찰로 추정될 뿐이다. 이 절터 역시 고즈넉하기 그지없는데, 흑산도에서 유일한 사찰인 관음사 스님이 매일 아침 공양을 드린다고 하니 신들의 정원보다는 외롭지 않다.
이곳부터 도로는 구불구불 휘어지며 상라산으로 오른다. 흑산도 일주도로의 상징과도 같은 ‘열두굽이길’이다. 상록수림으로 뒤덮여 사철 검푸른 모습이어서 흑산도다. 도로 주변에도 동백나무가 군락을 이뤘다.
고갯마루에 당도하면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가 서 있다. 서러운 마음 한풀이라도 하려는 듯 크고 우람하다. 노래비 옆에 이미자 핸드프린팅이 함께 있다. 이미자는 방송사에서 주최한 공연을 위해 2012년 9월 흑산도를 처음 방문했다고 한다. 10년이 흘렀는데 주민들은 아직도 어제 일처럼 얘기한다. 그만큼 흑산도의 상징적인 노래이자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미자 핸드프린팅은 ‘흑산도 아가씨’ 동상이 세워진 예리마을 포구에도 있다. 동상은 육지를 그리듯 먼 바다를 응시하고 있다.
고갯마루 상라산 전망대에 서면 노래비 아래로 지나온 마을과 포구가 그림처럼 내려다보이고, 맞은편으로는 흑산도의 서쪽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대장도와 소장도가 건넛마을처럼 가깝고, 수평선 부근에는 홍도가 아른거린다. 시간이 많지 않다면 이곳만 들러도 된다. 흑산도 절경의 절반은 보는 셈이다. 섬에서 하루 묵는 일정이면 이곳에서 꼭 일몰을 볼 것을 추천한다. 홍도 오른편으로 떨어지는 태양과 바다에 번지는 노을이 아름답다.
상라산 고갯마루에서 도로는 섬의 서쪽 자락을 따라 남쪽으로 이동한다. 바다 건너 100여 명이 산다는 장도의 풍광이 계속 따라온다. 가파른 산자락 끝 해안가에 자리잡은 마을 풍광이 이국적이다. 문암산 깊은 골짜기에 숨겨져 있다는 심리(지푸미)마을까지 이동하며 1969년 해안으로 침투한 간첩이 숨었다는 비리마을, 한반도 모양으로 구멍이 뚫린 지도바위 등을 지난다.
심리마을을 지나면 일주도로는 다시 한번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언덕을 넘는다. 바람도 세고 한도 많다는 한다령이다. 언덕배기에 일주도로 준공 조형물이 서 있다. ‘1004섬’ 신안을 상징하는 천사 석상인데 아무리 봐도 이질적이다. 울릉도만큼은 아니어도 흑산도 역시 지형이 험하다. 일주도로는 1984년 공사를 시작해 26년 만인 2010년에야 완공됐다.
한다령에서 올라온 만큼 내려가면 사리(모래미)마을이다. 지금은 방파제에 둘러싸인 잔잔한 포구에 숭어 떼가 헤엄치지만, 옛날에는 가루같이 고운 모래가 바람에 날릴 지경이었다고 한다. 섬에서도 가장 외진 이 마을에 ‘유배문화공원’이 있다. ‘자산어보’를 지은 정약전이 유배 생활을 한 곳이다. 정약전은 1801년부터 숨질 때까지 무려 16년 동안 흑산도를 비롯해 신안의 섬에서 유배 생활을 했다.
유배문화공원은 죄인의 활동 범위를 고향으로 제한하는 본향안치,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으로 보내는 절도안치, 집 둘레로 가시울타리를 치고 가두던 위리안치 등 유배의 여러 유형을 설명하는 팻말과 초가집으로 꾸며 놓았다. 맨 위에는 정약전이 후학을 가르치던 사촌서당(沙邨書堂)을 재현해 놓았다.
서당 바로 앞에 천주교 공소가 있다. 마치 정약전에게 바치는 헌정 건축물 같다. 그은 천주학을 신봉했다는 이유로 일가가 풍비박산 나는 고초를 겪었고, 이 멀리까지 유배됐다. 박상선 흑산성당 주임신부는 “죄인의 몸으로 포교를 할 수는 없었겠지만, 그의 믿음은 흑산도 천주교의 뿌리라 할 수 있다”고 했다. 1958년 진리마을에 완공된 흑산성당은 신안군에서 가장 먼저 지어진 성당이다.
공소 바로 아래에는 정약전을 비롯해 흑산도로 유배당한 인물을 주제로 조각공원을 조성해 놓았다. 고려 말부터 조선 후기까지 확인된 인물만 130명이 넘는다. 조각공원에는 1693년 ‘해괴한 짓’을 했다는 죄목으로 유배당한 나인 정숙에서부터 면암 최익현에 이르기까지 36명의 이름과 죄명을 나열해 놓았다.
최익현의 유배지는 사리마을에서 다시 언덕 하나를 넘어 소사리마을이다. 마을 어귀에 그의 유허비가 있고, 뒤편 바위에 ‘기봉강산(箕封江山) 홍무일월(洪武日月)’이란 글씨가 결기처럼 새겨져 있다. ‘중국 은나라의 기자가 봉한 땅이며, 명나라 주원장이 일으킨 세월’이란 뜻으로, 이런 나라를 일본이 어찌 감히 넘보느냐는 패기가 서린 글귀다. 뼛속 깊은 유교적 사대주의가 바탕이라 요즘의 인식과는 괴리가 크다.
일주도로가 나기 전 사리마을 주민들이 육지에 한 번 나가려면 새벽 밥을 해먹고 흑산항까지 2~3시간 산길을 걸었다고 한다. 흑산도에서도 끝 마을이니 세상의 끝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정기적인 배편도 없던 시절, 이곳까지 유배당한 이들의 고립감과 절망감은 헤아리기조차 힘들다.
소사리마을에서 예리마을까지 이동하며 도로 오른편으로는 영산도가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홍어로 유명한 나주 영산포의 유래가 된 섬이다. 이곳에서 잡힌 홍어는 육지로 이동하는 장시간 뱃길에서 자연적으로 곰삭아 지역의 대표 음식으로 발전했다. 삭힌 홍어를 먹지 않았던 흑산도에서도 요즘은 삭혀서 택배로 판매한다. 음식문화의 역류인 셈이다. 그래도 포구에서는 홍어 말리는 풍경을 흔히 볼 수 있다. 꾸덕꾸덕 말린 홍어는 주로 무침으로 먹는다고 한다.
예리마을 뒤편은 흑산공항 건설 예정지다. 소형 항공기 취항을 목표로 2009년부터 공항 건설 논의가 본격화했지만, 환경부의 반대로 13년째 표류하고 있다. 절해고도의 불편과 설움에서 벗어나려는 주민들의 절박함이 국립공원 훼손 아니냐는 반대 여론의 벽을 넘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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