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후두둑 떨어져도… 바위 꽃 무수히 피어나 붉은 섬

입력
2022.04.13 04:30
<152>목포에서 배로 2시간 30분, 신안 홍도

유람선이 홍도 10경 중 제1경인 남문바위 부근에 잠시 멈춰 있다. 섬을 한 바퀴 도는 유람선을 타면 바다에 흩뿌려진 기기묘묘한 바위 절경이 끝없이 이어진다.

섬이 많아 ‘천사(1004)의 섬’이라 자랑하는 신안은 대부분이 다도해국립공원에 속한다. 섬과 섬을 잇는 배에서 보면 바다가 섬에 갇힌 형국이다. 이런 풍광도 흑산도 가는 뱃길에서만은 예외다. 목포에서 출항한 쾌속선이 도초도를 지나면 한 시간가량 거칠 것 없는 망망대해가 펼쳐진다. 홍도는 흑산도에서 바깥 바다로 다시 30분을 달려야 닿는 곳이다. 목포에서 서남쪽으로 약 133㎞, 2시간 30분이 걸린다. 섬 전체가 1965년 천연기념물, 1981년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데 이어 2009년부터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보호받고 있다. 경관이나 생태의 우수성이 진작에 검증된 섬이다.


낯설고 설레는 서해 먼바다 작은 섬

바다는 잔잔하고 날씨는 쾌청했지만 섬의 산꼭대기는 구름에 가려져 있었다. 그 구름모자 아래로 붉은 기운을 띤 하얀 암벽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다. 벙거지모자처럼 봉긋하면서도 거대한 바위 봉우리를 돌자 옴폭한 산자락에 자리 잡은 마을이 그림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상록수림에서 비껴 쏟아지는 오후 햇살이 눈부시다. 서해 먼바다의 작은 섬이 더욱 낯설게 느껴진다. 잠시 잠깐 지중해의 어느 해안마을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진다. 6일 오후 쾌속선을 타고 도착한 홍도에 대한 첫인상이다.

섬 남쪽 잘록한 허리에 자리 잡은 홍도 1구마을.


바위 절벽에 올라앉은 홍도 1구마을.

홍도는 폭 200~800m, 남북으로 약 7㎞ 길쭉하게 뻗은 작은 섬이다. 그럼에도 깃대봉(368m)을 중심으로 높은 능선으로 연결돼 걸어서 돌아보기에는 결코 쉽지 않다. 섬에 도로가 없으니 당연히 차도 없다. 오토바이를 개조한 짐수레만이 항구와 숙박업소를 오갈 뿐이다.

남동쪽 잘록한 허리에 1구마을, 북서쪽 구릉에 2구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주민등록상 인구는 400명이 넘지만, 여름철 관광 성수기를 빼면 실제 거주하는 사람은 훨씬 적다고 한다. 1구마을 중앙에 터를 잡은 홍도분교에는 현재 5학년 3명의 학생이 전부다. 1구마을 주민은 대부분 숙박과 식당 등 관광업에, 2구마을은 1구마을에 해산물을 공급하는 어업에 주로 종사한다.

홍도 1구마을 당집 주변에 붉은 동백꽃이 후두둑 떨어져 있다. 동백꽃은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볼 수 있다.


일출 전망대에서 내려오는 길에 본 홍도 1구마을.


홍도 1구마을 산책길에서 본 '세상에서 가장 작은 밭'.


일출 전망대에서 내려오는 길에 본 홍도 1구마을.


숙소에 짐을 풀고 1구마을 산책에 나섰다. 남쪽 기슭의 일출 전망대까지 돌아오는 1㎞ 남짓한 코스다. 민가를 벗어나자마자 바로 동백숲이다. 붉은 꽃잎이 후두둑 떨어져 내린 짙은 그늘 속에 신당과 제당, 두 개의 자그마한 당집이 자리 잡고 있다. 마을에선 매년 정월 초사흘, 이곳에서 산신제와 당할아버지 제사를 올리고 선창으로 내려와 풍어를 기원하는 ‘둑제’를 지냈다고 한다.

동백숲을 벗어나 가파른 계단을 조금 오르면 전망대다. 우람한 바위 봉우리가 쪽빛 바다를 감싸고 있는 항구의 풍광이 발아래 시원하게 펼쳐진다. 하산길은 마을 뒤편으로 연결된다. 겨우 어른 키만한 ‘세상에서 가장 작은’ 밭뙈기 사이로 난 길이다. 그 길 끝에 걸린 하얀 벽과 붉은 지붕, 쪽빛 바다가 걸린다. 이미 훑은 풍경인데 자꾸 낯설게 느껴진다. 육지와 멀리 떨어진 섬이 주는 해방감과 고립감이 묘한 설렘을 불러일으킨다.

마을 뒤편 몽돌해수욕장으로 나가는 언덕에는 ‘홍도원추리’ 꽃밭이 조성돼 있다. 홍도가 원산지라 그렇게 불린다. 주황빛을 띠는 일반 원추리와 달리 은은한 노란색이다. 7월이면 섬 여기저기에 피어나고 축제도 열린다.

섬 북서쪽 산기슭의 홍도 2구마을.


2구마을의 홍어잡이 그물. 홍도에서 홍어잡이 어선은 이 마을에 딱 한 척뿐이다.


홍도 2구마을 담장에 홍도원추리가 그려져 있다. 7월이면 섬 곳곳에서 원추리가 피어난다.


몽돌해수욕장 선착장에서 도선을 이용해 2구마을로 이동한다. 약 10분 정도 달리면 가파른 산자락을 파고든 구릉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이 보인다. 조선 숙종 4년(1679) 제주 고씨 성을 가진 인물이 처음 정착했다니 1구보다 오래된 마을이다. 주변 산등성이에는 구실잣밤나무·후박나무·식나무·동백나무 등이 검푸른 상록수림을 형성하고 있다.

그 숲길을 따라 약 700m 언덕을 오르면 산중턱에 1931년 세운 하얀 등대가 서 있다. 서해안 남북 항로를 오가는 선박들의 길잡이 역할을 하는 홍도등대로, 주변을 공원처럼 깔끔하게 정비해 놓았다. 밑동에서부터 가지를 뻗어 분재처럼 멋들어지게 자란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1931년 세워진 홍도등대 뒤편으로 거대한 암벽이 펼쳐져 있다.


홍도등대 주변 솔숲. 거센 해풍에 키가 크지 못하고 분재처럼 자랐다.


유람선에서 본 홍도등대 풍경.


전망대를 겸하는 숙소 옥상에 오르면 홍도 서쪽 작은 바위섬들이 점처럼 떠 있다. 커다란 직사각형의 돌섬 가운데에 구멍이 뚫린 ‘독립문바위’ 주변으로 떨어지는 노을이 특히 아름답다. 등대 뒤편은 깎아지른 암벽이 병풍을 두르고 있다. 붉은 노을을 흠뻑 머금은 그 모습이 또한 장관이다.

일설에는 붉은 동백꽃이 섬을 뒤덮고 있어 홍의도(紅衣島)라 불렸다고 한다. 지금은 섬의 경사면과 바다 위에 솟은 바위가 홍갈색을 띤 규암이기 때문에 홍도로 부른다고 설명한다. 여기에 석양이 비치면 섬은 온통 붉은 기운에 휩싸인다.

홍도 10경은 바다에… 유람선으로 섬 한 바퀴

홍도 여행의 백미는 유람선 관광(2만5,000원)이다. 배를 타야만 남문바위, 실금리굴, 석화굴, 탑섬, 만물상, 슬픈여바위, 부부탑, 독립문바위, 거북바위, 공작새바위 등 홍도 10경을 모두 볼 수 있다. 1구마을 선착장을 출발해 시계방향으로 약 2시간가량 섬을 한 바퀴 도는 형식이다.

홍도유람선이 관광객들에게 사진 찍을 시간을 주기 위해 제1경 남문바위 부근에 잠시 정박해 있다.


홍도유람선에서 본 남문바위와 칼바위.


출발하자마자 홍도의 절경 속으로 빠져든다. 꺾쇠 모양으로 구멍이 뻥 뚫린 남문바위 옆에 칼바위가 솟아 있다. 관광객이 충분히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유람선도 잠시 쉬어간다. 남문바위를 지나면 배는 해안 절벽을 따라 이동한다.

어떻게 이름을 붙이기 불가능할 정도로 기기묘묘한 암벽이 이어진다.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보아 넘기기 아까운 비경이다. 수직으로 갈라지고, 수평으로 쌓이고, 빗금으로 층을 이룬 온갖 형상의 ‘바위 꽃’이 바다에 흩뿌려져 있다. 파도의 침식으로 생긴 해식동굴은 이루 셀 수도 없을 정도다. 단층과 절리, 층리와 연흔 등 암반 지형에서 볼 수 있는 모든 바위 형상의 총집합체다. 거북바위 물개바위 원숭이바위 주전자바위 떡시루바위 사랑바위 등 배의 이동에 따라 가이드의 설명도 쉴 새 없이 이어진다.

홍도유람선에서 본 기기묘묘한 바위 절경.


유람선에서 수직과 수평, 빗금 모양의 다양한 단층을 볼 수 있다.


유람선이 이동함과 동시에 비경이 끝없이 이어진다.


곧 떨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바위.


감탄사를 연발하면서도 대자연의 조화 앞에 인간의 상상력이 얼마나 초라한지 깨닫는다. 그 많은 바위들이 도대체 어떻게 형성된 건지 보면 볼수록 신비롭고 궁금해진다. 경관에 대한 찬사는 넘쳐나지만, 지질에 대한 해설이 없으니 못내 아쉽다.

유람선은 섬의 북서쪽 ‘독립문바위’에서 다시 잠시 머문 후 반대편 슬픈여바위로 이동한다. 옛날 뭍으로 나갔던 부부가 돌아오는 길에 돌풍을 만나 이곳에서 난파되고 말았다. 이를 본 일곱 남매가 부모님을 구하기 위해 거센 물살로 뛰어들었다가 그대로 바위로 변했다는 슬픈 전설을 간직한 곳이다. 일곱 남매 바위로 둘러싸인 바다는 아늑하고 잠잠하다. 그곳에서 유람선 관광의 마지막 파티가 열린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어선에서 바로 회를 떠서 여행객에게 판매한다. 남매의 애잔한 효성이 스민 바다에서 이렇게 낭만 짭조름한 파티라니.

섬 서쪽의 독립문바위. 아래에 구멍이 나 있다.


사선의 퇴적층이 선명한 바위섬.


홍도 동편에 절벽을 이루고 있는 기암괴석.

“봄이지만 홍도 바다는 여전히 바람이 찹니다. 꼭 든든하게 차려입고 오십시오. 6월 말부터 홍도에는 노란 원추리가 피어납니다. 바다에서 따스한 바람이 불어오고 기암괴석이 석양에 붉게 물드는 그때가 가장 아름답습니다.” 선상 가이드의 재방문 권유로 2시간여 유람선 관광이 마무리된다.

슬픈여바위 부근에서 선상 회 파티를 즐기는 것으로 유람선 관광이 마무리된다.


슬픈여바위 부근에서 대기하고 있던 어선이 유람선이 도착하면 즉석에서 회를 썰어 판매한다.


목포에서 신안 홍도까지 가는 뱃길. 그래픽=성시환 기자

홍도 여행 메모

▦홍도까지는 목포항에서 하루 2회 쾌속선이 왕복한다. 오갈 때 신안 도초도와 흑산도를 경유한다. 승선료는 편도 4만6,000원. 보통 홍도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다음 날 오전 7시30분 시작하는 유람선관광을 마치고, 바로 흑산도로 나와 택시투어를 한 후 오후 배로 목포로 돌아오는 1박2일 일정을 잡는다. 두 섬의 명소는 두루 훑는 셈이지만, 시간이 빠듯해 여행이 주는 느긋함을 즐길 겨를이 없다. 홍도에서 최소 2박을 하면 그나마 여유롭게 여행할 수 있다.
▦홍도 2구마을에 갈 계획이면 마음을 느긋하게 먹어야 한다. 1구마을과 2구마을 사이에는 쾌속선 시간에 맞춰 도선(무료)이 다니지만 2구마을 이용객이 없으면 운항하지 않기 때문이다. 두 마을을 잇는 길은 깃대봉을 넘는 등산로 밖에 없다. 2시간이 넘게 걸린다. 마을 주민에게 부탁해 배를 이용하면 최소 4만 원이다.
▦홍도의 숙박시설을 모두 합하면 약 400객실에 달한다. 성수기를 제외하면 넉넉한 편이다. 숙박시설은 대부분 식당을 겸하고 있다.


홍도(신안)=글·사진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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