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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으로 한 시대와 세대를 이끈 춤꾼

입력
2022.05.10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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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0 이애주

1987년 6월 서울대 도서관 광장에서 춤추는 이애주. 한국일보 자료사진

1987년 6월 서울대 도서관 광장에서 춤추는 이애주. 한국일보 자료사진


춤의 기원은 구애나 전희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있다. 생식 번식을 위해서라는 것이다. 원시 주술사들이 신과 교감하며 행한 갈구의 몸짓도 그렇게 설명된다. 춤은 욕망으로 탄생해서 욕망을 반영하며 욕망과 더불어 분화하며 정교해진 셈이다. 춤으로 무리와 사회를 짓고, 춤을 통해 허용되는 욕망과 가치를 공유하고, 나아갈 길을 열어온 것이다. 그래서 욕망이 없는 춤은 문화에 포섭되지 못하고, 춤이 없는 욕망은 추하고 역하다. 그렇게 춤은 입말 언어가 생겨나기 전부터 언어가 구현하고자 했던 바를 먼저 이루며 언어를, 사회를 이끌어온 것일까.

뇌의 본질적 기능이 사고(思考)가 아닌 동작, 즉 원하는 대로 몸을 움직이는 데 있다고 주장하는 뇌과학자들이 있다고 한다. 식물에 없는 뇌가 동물에게만 존재하는 까닭도, 물속을 헤엄쳐 다니던 멍게(우렁쉥이) 유충이 성체로 자라 고착생활을 시작하면서 유충기의 뇌를 스스로 소화시켜 없애버리는 것도, 꾸준히 몸을 움직이는 게 뇌의 노화-퇴화를 늦추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도, 이 가설을 뒷받침하는 사례라고 한다.

물론 확정적 이론은 아니고, 그에 반하는 의미로 '몸의 기억'이란 비유적 표현도 있지만, 뇌와 몸(움직임)이 '본질적·근원적'으로 연루돼 있다는 것은 선험적으로, 아니 경험적으로도 납득될 때가 있다. 장인의 기능적 손놀림과 연인들의 본능적 몸짓이, 스포츠와 춤이 그렇다.

1987년 6월, 서울대 체육학과에서 춤을 가르치던 만 39세 춤꾼 이애주(1947.10.11~2021.5.10)가 민주화 출정식이 열린 서울대 도서관 광장(아크로) 시멘트 바닥에서 무명옷에 버선발로 허공을 찢고 바람을 가르며 이어간 춤사위가 그러했다. 그의 춤은 연단에 섰던 이들의 그 어떤 격정의 말보다 강렬하게 무리를 일으켰고 길을 제시했다.

그는 YS 집권기인 1996년에야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예능보유자로 지정되고 서울대 교수로도 임용됐지만, 이미 그날 그는 춤이 무엇이고 자신의 춤의 지향이 무엇인지 가르친 시대의 스승이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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