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세금으로 축의금을 받았다

입력
2022.05.09 22:00
27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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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이 끝나고, 소식을 전하지 못한 몇몇 지인으로부터 섭섭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청첩장을 어디까지 돌려야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카톡 마지막 대화가 2년 전이었던 사람도 있고, 궂긴소식을 들었지만 경황이 없어 조의금을 보내지 못한 지인도 있었다. 청첩장 돌리다, 'A선배에게도 보냈나? 소식은 알려라'는 조언을 듣고 어색하게 연락한 경우도 있었다.

결혼 커뮤니티에 가입해보니 청첩장과 인간관계에 대한 글이 매일 올라왔다. 친구결혼식에 10만 원을 냈는데 그 친구가 자기 결혼식엔 5만 원만 낸 사연, 동료에게 모바일청첩장을 줬는데 '읽씹'당한 사연, 1만 원짜리 축의금을 받고 황당했다는 사연이 올라왔다. 댓글들은 '손절'을 외치고 있었다.

부끄러운 과거가 떠올랐다. 20대에는 선배 결혼식이 좋았다. 5명의 친구와 돈을 모아 5만 원을 축의하고 배불리 뷔페음식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울산에서 열린 선배 결혼식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비정규직 집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수십 명의 청년이 떼로 가서 먹었는데 축의를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식대가격을 몰라서 할 수 있었던 만행이었다. 물론, 선배들은 '손절' 대신 웃음으로 반겨줬다.

축의금을 둘러싼 갈등은 새 가족이 탄생하는 데 드는 비용과 관련돼 있다. 함께 살 집과 살림살이, 식사대접, 신혼여행과 선물 등 모든 과정에 돈이 든다. 이 비용을 두 사람이 감당할 수 없으므로, 주변에 청첩장과 식권을 주고 현금을 받는 교환이 일어난다. 원인과 결과가 바뀌기도 하는데 부모님이 일생 동안 뿌린 부조금을 회수하기 위해서도 식이 필요하다. 부조금은 인간관계를 담보로 만든 일종의 금융상품이다. 개인이 결혼, 출산, 장례 등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만든 사적보험이다. 불편하더라도 인맥이라는 끈적한 보험에 가입해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직업, 자산, 취미, 성격, 부모에 따라 보험 상품의 질이 달라진다. 하객 숫자, 화환, 축의금 규모도 다르다. 버스 두 대에 직원을 태우고 딸 결혼식에 참석시키는 사장이나 축의금을 이용해 증여를 하는 자산가가 있는 반면 하객알바를 구하는 사람도 있다. 비혼주의자나 거추장스러운 행사를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돈만 내고 혜택을 받지 못하기도 한다.

축의금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면 공적 부조의 역할이 커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공공에 대한 신뢰가 2년 동안 연락 안 한 지인보다 강해야 한다. 역할을 해야 할 정치인들은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조국사태에 크게 실망한 국민들은 한동훈을 비롯한 장관 후보자를 보면서 익숙한 좌절을 느끼고 있다. 조국도 한동훈도 자녀에게 주려 했던 것은 물질적 부만이 아니다. 사회적 지위와 품위, 교양, 인맥 등이다. 공고해 보이는 사회지도층의 '친목질'을 보면서 국민들도 독자생존을 추구하게 된다.

우리에게 가장 큰 축의를 해준 이는 국가였다. 청년임대주택 모집공고를 보고 예비신혼부부로 신청했는데 덜컥 당첨되어 결혼하게 됐다. 혼수는 옵션으로 갖춰져 있었다. 하얀 봉투에 이름을 새기지 않은 국민들이 나의 시작을 축하해준 셈이다. 내가 낸 세금 역시 누군가에게 축의금으로 전달됐으면 좋겠다. 이를 전달해줄 정치인, 더 많은 세금과 더 많은 복지를 추구하는 게 사적세습보다 낫다는 걸 삶으로 보여줄 정치인을 보고 싶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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