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원하는 선물이 '큰 아파트'라는 아이들

입력
2022.05.04 22:00
23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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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주일학교에서 기타 반주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아이들과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하다 "앞으로 나와서 같이 율동해요"라고 외치면 몇몇 아이들이 뛰어나와 신나게 몸을 흔든다. 다들 웃음이 터져 나오고 박수도 크게 바뀐다. 아이들의 티 없이 맑은 순수함이 절로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주는 것을 느낀다.

그날은 3학년 반 선생님이 결석하셔서 내가 1일 교사로 아이들을 담당한 날이었다. 주제가 '선물이 주어진다면?'이었기에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다들 어떤 선물을 받고 싶으세요?" 그날 6명 아이들 중 5명은 "큰 아파트를 갖고 싶어요"라고 대답했다. 나는 살짝 놀랐다. 열 살 남짓한 아이들이 어떻게 똑같이 큰 평수의 아파트를 갖고 싶다고 말할까? 내심 무슨 장난감이나 전자제품 같은 것을 원하지 않을까 했는데 내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기 때문이기도 했다.

"왜 아파트가 갖고 싶으세요?"라고 묻자, 아이들은 내 질문이 이상하다는 듯이 큰 집을 가지는 것이 좋은 것 아니냐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차분히 되물었다. "선물로 큰 집을 받게 되면 너무 좋은 거 같아요. 자, 그럼 생각해봐요. 모두 큰 집을 선물로 받았어요. 그럼 그다음은 선물받은 집을 내가 잘 관리해야겠지요? 큰 집이 생기면 청소도 내가 해야 하고 쓰레기도 내가 다 버리고 관리비도 내가 내야 하고 각종 해야 할 일들이 많아요. 작은 선물을 받았을 때는 그냥 내 방에 두고 가지고 놀면 되겠지만 큰 선물인 집을 받으면 내가 관리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 보도록 해요."

그렇게 말하자 아이들이 고민을 잠시 하더니 한두 아이들은 "그럼 난 큰 아파트 안 받을래요"라고 말했다. "다른 거 받을래요."

"네. 선물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크기로 오는 거라고 생각해요. 아파트는 정말 귀하고 좋은 선물이지만 내가 무언가를 갖게 되었을 때는 그것을 잘 관리할 수 있는 책임이 따르는 거예요. 그래서 어른들은 내가 준비됐을 때 거기에 합당한 선물을 줍니다. 아파트 선물이 나쁘다는 뜻이 아니에요. 여러분이 지금부터 열심히 공부하고 어른으로 잘 자라서 큰 아파트를 사용하고 관리할 만큼 성장하면 당연히 그에 합당한 선물이 여러분께 주어질 거예요. 지금부터 열심히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잘하면서 좋은 아파트를 선물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어린이가 되어 봅시다."

마음 한편으로 열 살 된 아이들이 왜 선물로 아파트를 받겠다고 말했을까? 생각하니 다 부모들에게 귀동냥으로 들은 말들이겠거니 생각하니 씁쓸했다. 동심이라는 것이 그렇게 순진하다. 부모가 말하는 대로 흡수해 버리는 아이들 아닌가. 올해로 어린이날 제정 100주년을 맞이한다. 소파 방정환 선생이 가난과 기아에 힘겨워하던 아이들을 위해 사랑으로 이룩한 귀한 날의 의미를 세운 지 100년이 지났다. 모름지기 대한민국은 전쟁과 가난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입양아 수출국가라는 불명예를 낳기도 한 나라였다. 경제발전이라는 이면에 사회적으로 아동학대 사건이 적잖게 들려오기도 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보면서 배운다. 아이처럼 맑고 순수해짐이 배움이다. 배움은 반드시 성공을 목적으로 하지만은 않다. 우리가 잊고 살아온 것들을 회복하는 것도 배움이다. 아이에게서 가장 소중한 가치를 배우는 어린이날이 되길 희망한다.


김대석 건축출판사 상상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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