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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첫 월드스타' 강수연, '고교생일기'에서 '지독한 사랑'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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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가 세계적으로 인정 받게 된 게 무엇보다 기뻐요.”(1987년 베니스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 소감 중에서)
송강호와 전도연, 이병헌이 있기 전에 강수연이 있었다. 그는 한국영화계가 낳은 첫 ‘월드스타’였다. 아시아 여배우 최초로 베니스영화제에서 주연상을 수상한 뒤엔 1989년 영화 ‘아제 아제 바라아제’로 모스크바영화제에서 또 다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당시 그의 나이 20대 초반. 베니스영화제 수상 당시 그는 자신을 “부족한 점이 많은 신인”이라며 겸손하게 말했지만 세 살 때부터 시작한 그의 연기 경력은 이미 20년에 이르고 출연작이 100편이 넘은 상태였다.
강수연은 현기증이 날 정도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는 배우였다. 신파극의 아역과 어린이극의 주인공에서 출발해 ‘얄개(얄밉고 되바라진 행동을 하는 아이)’라고 불리던 발랄한 10대 청소년 역할을 거쳐 멜로드라마, 시대극, 로맨틱코미디, 스릴러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에 출연했다. 배우로 수상한 트로피만 20개가 넘는다.
10대 후반의 강수연을 널리 알리 작품 중 하나는 KBS 드라마 ‘고교생일기’(1983~1986)였다. 아역 시절 여러 작품에 함께 출연했던 배우 손창민과 함께 극 초반 인기를 이끌었다. 강원도 시골에서 서울로 전학 온 유현수를 연기한 그는 순박하면서도 발랄하고 씩씩한 고교생 역할을 매끄럽게 소화해내 이듬해 백상 에술대상 TV 부문 여자 신인 연기상을 수상했다. 당시 연출을 맡았던 운군일 PD는 “강수연이 홍수로 촬영장에 늦게 도착해 대본을 받은 지 2시간 만에 촬영을 시작했는데 NG 한번 내지 않는 기적 같은 능력을 보여줬다”면서 “놀라운 집중력과 연기력을 지난 천재배우”라고 치켜세웠다.
중학생 때 영화 ‘약속한 여자’(1983)에서 성인 역을 연기할 정도로 폭넓은 배역을 맡았던 그는1985년 배창호 감독의 ‘고래사냥2’에서 사고로 기억을 잃은 소매치기를 연기하며 주연배우로서 가능성을 증명했다. 어눌하면서도 싱그러운 매력을 지닌 소녀 영희를 연기한 그를 가리켜 배 감독은 "함께 작업했던 배우 중 ‘넘버원’"이라고 했다.
1987년 한국영화계는 강수연의 독무대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 해 동안 그가 주연을 맡은 영화 네 편이 차례로 개봉했다. ‘씨받이’(3월)를 시작으로 또 한 편의 시대극 ‘됴화’(6월), 청춘 영화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7월), 역사극 ‘연산군’(10월)까지 강수연은 폭넓은 스펙트럼으로 무한한 잠재력을 드러냈다. 한 캐릭터를 연기하면서도 카멜레온처럼 수시로 변신하는 얼굴은 그의 최대 무기였다. '연산군'의 이혁수 감독은 "이미지를 시시각각 바꿔가는 묘한 재주를 지닌 연기자"라면서 "동물들이 상황에 따라 변하는 보호색을 갖고 있듯 그때 그때 분위기에 맞춰 여러 개의 얼굴을 만들 줄 안다"고 평했다.
놀라운 집중력과 순발력을 보여준 여러 작품들 가운데서도 가장 주목 받은 것은 ‘씨받이’였다. 조선시대 양반집에 대리모로 들어간 뒤 버림 받는 여성의 기구한 삶을 다룬 작품으로 가부장적 질서에서 희생당하는 여성의 수난사를 생생하게 그려내 국제적인 호평을 받았다. 특히 강수연은 순박하고 당찬 17세 철부지 소녀의 무모함, 낯선 남성과 밤을 보내야 하는 두려움, 사랑에 눈을 뜨는 과정, 아이를 빼앗긴 여성의 처절한 설움 등을 예리하게 연기해 극찬을 받았다. 그는 베니스영화제 수상 후 “아이를 낳는 진통 장면에서 애를 먹었다”면서 촬영 전 1주일간 비디오테이프 등을 통한 ‘간접 경험’을 통해 연기를 할 수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모스크바영화제 수상작인 ‘아제 아제 바라아제’(1989)도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힌다. 한승원(소설가 한강의 아버지) 작가의 원작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깨달음을 향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수행을 하는 두 비구니의 파란만장한 삶을 대조적으로 비춘다. 강수연이 연기한 순녀는 세속에서 중생과 부대끼며 그들을 구원함으로써 깨달음에 이르려 하는 대승적 수행을 하는 인물이다. 이 작품에서도 강수연은 입체적으로 급변하는 인물을 소화하며 독보적인 연기력을 과시했다. 고통스런 현실을 뒤로한 채 비구니가 된 순녀는 한 사내를 돕다 파계승이 되고 이후 속세의 중생과 부딪히며 조금씩 변화한다.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는 구도자의 초탈한 얼굴을 섬세하게 조각해낸 그에게 평단과 대중은 아낌 없는 박수를 보냈다.
강수연은 변화무쌍한 인물이나 광기 어린 캐릭터를 연기하는 데 있어선 독보적인 배우였다. 이문열의 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긴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1990)는 흥행에서 크게 성공한 작품으로 강수연의 '마라맛' 연기의 진수를 접할 수 있다. 영화는 시골 출신 법대생(손창민)과 자유분방한 여성(강수연)의 굴곡진 연애사를 통해 당시 한국사회에 깊숙이 침투한 ‘아메리카니즘’과 보수적인 가치관의 충돌을 그린다. 강수연은 허영과 욕망을 추구하면서 망가져가는 서윤주 역을 맡아 신들린 연기를 펼쳤다. 도발적이면서도 자유분방한 성격의 인물을 진한 색채로 그려낸 강수연은 다시 한 번 찬사를 이끌어냈다. 대종상영화제와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여우주연상 수상작.
하일지의 동명 소설을 장선우 감독이 극화한 영화 ‘경마장 가는 길’(1991)에서 강수연의 연기는 전환점을 맞이한다. 무엇보다 작품 성향이 이전 출연작들과 크게 달랐다. 기승전결의 고전적 구성에서 벗어난 포스트 모더니즘 경향의 이 작품에서 그는 프랑스 파리에서 동거했던 R(문성근)과 다시 만나게 되는 여성 J를 연기했다. 영화는 주로 실내 공간 위주로 두 남녀가 나누는 성적 ‘밀당’을 롱테이크로 관찰한다. 비루하고 위선적인 속물 지식인 R을 연기한 문성근의 연기도 훌륭하지만 애매한 표정과 화술로 R의 유혹을 피하면서도 그를 이용하려 하는 J 역의 강수연이 보여준 연기는 단연 압권으로 꼽힌다.
강수연의 물 오른 연기력은 1996년작 ‘지독한 사랑’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명세 감독의 빼어난 연출력을 확인할 수 있는 이 작품에서 그는 김갑수와 함께 한국 멜로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보여줬다. 영화는 시인이자 교수인 유부남 영민(김갑수)과 문화부 기자인 미혼 여성 영희(강수연)의 ‘미친 사랑’이라는 다분히 통속적인 소재를 다룬다. 그러나 동화적인 세트, 인위적인 조명과 대비되는 날 것 그대로의 격정적 사랑은, 이 작품을 평범한 멜로 영화와 거리를 두게 한다. 강수연과 김갑수는 낭만적인 사랑의 감정에서 시작해 지독하게 뜨거웠다가 때론 유치해지고, 또 치명적으로 변하는 관계와 그 속에서 요동치는 감정의 드라마를 고통스러울 만큼 사실적으로 연출해낸다. 강수연은 당시 인터뷰에서 영희를 연기하기 위해 "동작선을 많이 약화시키고 목소리 톤을 낮추며 전체적인 이미지를 순화시키려 했다"고 말했다. 흥행에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고 상복도 없었던 작품이지만 강수연의 연기 인생에서 중요한 작품 중 하나로 꼽히기에 부족함이 없다.
강수연은 동시대의 여성을 대변하면서도 다가올 시대의 여성을 제시한 배우였다. 일과 사랑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현대 여성의 딜레마를 그린 '그대 안의 블루'(1992)에 이어 ‘무쏘의 뿔처럼 혼자 가라’(1995)에선 독립적인 여성으로 살아가고픈 욕망과 한편으론 남성에게 의지하게 되는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여성을 보여줬다. 20대 후반 여성의 도발적인 성담론을 보여준 임상수 감독의 ‘처녀들의 저녁식사’(1998)에선 자유로운 섹스를 즐기는 성해방론자 호정을 연기했다.
21세기 들어 한국영화계가 급변하면서 강수연의 출연작은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작품은 2001년 SBS 드라마 ‘여인천하’가 사실상 마지막이었다. 2007년 임권택 감독의 ‘달빛 길어올리기’,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이 2013년 연출한 ‘주리’ 등에 출연한 적이 있지만 대중적 관심과는 거리가 먼 작품이었다. 2006년 '한반도' 이후 모처럼 상업영화계에 돌아와 촬영한 ‘정이’(감독 연상호)는 안타깝게도 그의 유작으로 남게 됐다.
강수연은 호탕한 성격의 배우였다. 영화 ‘베테랑’(2015)의 대사로 유행어가 된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는 류승완 감독이 술자리에서 강수연에게 들은 "우리 영화인이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를 기억해뒀다 쓴 대사였다고 한다. 그러나 배우로서 그의 꿈은 소박했다. 그저 오랫동안 연기 생활을 이어가 '멋진 할머니 배우'가 되는 것이 목표였다. 2007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했던 이야기다.
“좋은 연기자라면 인생에 있어 다섯 손가락에 꼽을 만한 작품이 있어야 성공했다고 볼 수 있어요. 이를 위해 끊임 없이 도전해야죠. 배우는 어떤 직업보다 치열하고 냉정해요. 전 어려서 타의로 연기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배우는 정말 힘든 직업입니다. 슬럼프를 자주 겪었는데 딱히 탈출 방법이 있기보다 스스로 견뎌냈어요. 배우란 나이를 먹고 관록이 쌓이면 그에 걸맞은 몫이 있게 마련이죠. 전 70대가 돼 ‘집으로’ 같은 영화에 출연하는 멋진 할머니 배우가 되는 게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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