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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스타’ 강수연 끝내... 하늘의 별이 되다

입력
2022.05.07 16:25
수정
2022.05.07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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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후 3시 입원 치료 중 별세

영화배우 강수연씨. 한국일보 자료사진

영화배우 강수연씨. 한국일보 자료사진

1980~90년대 한국 영화계를 풍미했던 ‘월드 스타’ 강수연씨가 뇌출혈로 쓰러져 입원 치료를 받다가 7일 오후 3시 세상을 떠났다. 향년 56세.

고인은 40년 넘게 한국 영화의 간판이자 버팀목이었다. 한국 영화 암흑기 등불처럼 활약하며 21세기 충무로르네상스로 향하는 발판 역할을 했다.

고인은 196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풍문여중과 동명여고를 졸업했다. 3세 때 연기 인생을 시작했다. “집 앞 골목에서 친구들이랑 놀고 있는데, 어떤 아저씨가 와서 ‘너 엄마 어디에 있니?’”라며 손을 잡고 고인을 고인의 집에 데리고 가면서부터다.

공식 데뷔작은 동양방송 드라마 ‘똘똘이의 모험’(1971)이다. 아이들이 새총으로 간첩을 잡는다는 내용이 담겼다. 고인은 ‘이쁜이’로 출연했다. 드라마는 당시 문방구 새총이 불티나게 팔릴 정도로 인기를 모았다. 스크린 데뷔작은 ‘핏줄’(1976)이다. ‘별 삼형제’(1977)와 ‘어딘가에 엄마가’(1978), ‘하늘나라에서 온 편지’(1979) 등 관객 눈물샘을 자극하는 영화들로 인기를 모았다. 고인은 브라운과 스크린을 바쁘게 오가며 아역배우로 맹활약했다. 고인은 2015년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민학교(초등학교) 때 일요일에 쉰 적은 단 2번”이라며 “학교 수업을 위해 일요일에만 촬영을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강수연의 영화 속 모습들.

강수연의 영화 속 모습들.

활약상은 청소년기로도 이어졌다. KBS 드라마 ‘고교생 일기’(1983)에서 고교생으로 출연해 청소년들의 사랑을 받았다. 당시 청소년 잡지 표지는 고인 사진이 차지하는 경우가 잦았다. 고인은 “고교 1학년 무렵 뭘 해야 할까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영화만 하기로 결심”했다. 고교 2학년 때부터 영화에만 출연했고, SBS 드라마 ‘여인천하’(2001)로 20여년 만에 방송 복귀를 해 화제를 모았다. 고인은 “영화를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며 “영화를 조조할인으로 혼자 가서 보는데 잠옷 바람에 화장하지 않은 얼굴로 모자를 쓰고 가곤 한다”고 한국일보에 밝혔다.

강수연은 1987년 '씨받이'로 베니스영화제 최우수여자배우상을 받으며 한국 영화를 세계에 알렸다. 태흥영화사 제공

강수연은 1987년 '씨받이'로 베니스영화제 최우수여자배우상을 받으며 한국 영화를 세계에 알렸다. 태흥영화사 제공

성인 배우로는 ‘W의 비극’(1985)이 첫 영화다. 배창호 감독의 ‘고래사냥2’(1985), 배우 박중훈과 호흡을 맞춘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1987) 등을 거치며 청춘 스타로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1987년엔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로 베니스영화제 최우수여자배우상을 받아 국민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한국 배우로는 세계 3대 영화제(칸ㆍ베를린ㆍ베니스) 첫 수상이었다. 한국 영화가 ‘방화’로 멸칭되며 질이 낮다는 인식이 팽배했던 시기의 수상 소식이었다. 고인은 1989년 공산권을 대표하는 영화제로 당시 세계 4대 영화제 중 하나로 꼽혔던 모스크바영화제에서 ‘아제 아제 바라아제’로 최우수여자배우상을 수상했다. 국내 언론은 영화제에서 잇단 수상하자 고인의 이름 앞에 ‘월드 스타’라는 수식을 붙이기 시작했다. 베니스영화제 최우수여자배우상 수상 후 옥관문화훈장을 서훈했다.

1990년대는 고인의 전성기 중 전성기였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1990)와 ‘베를린 리포트’ ‘경마장 가는 길’(1991), ‘그대 안의 블루’(1992),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1995), ‘지독한 사랑’(1996), ‘처녀들의 저녁식사’(1998) 등 화제작들에 출연하며 인기를 이어갔다. 연기 스펙트럼이 넓어 한 많은 조선 여인(‘됴화’), 궁중 암투를 벌이는 장녹수(‘연산군’), 접대부(‘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 등 다종다양한 역할을 해냈다. 배창호 장길수 장선우 이명세 이현승 박광수 등 당대 최고로 꼽히던 감독들과 협업했다. 2001년엔 드라마 복귀작 ‘여인천하’에서 정난정을 연기하며 30%대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강수연씨가 제3회 강릉영화제 개막식에서 레드카펫을 걷고 있다. 고인이 공식적으로 대중에 얼굴을 비친 마지막 모습이다. 연합뉴스

지난해 10월 강수연씨가 제3회 강릉영화제 개막식에서 레드카펫을 걷고 있다. 고인이 공식적으로 대중에 얼굴을 비친 마지막 모습이다. 연합뉴스

2000년대 들어 고인의 카메라 앞 활동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달빛 길어올리기’(2011) 이후 장편극영화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대신 문화행정가의 면모가 두드러졌다. 1998년부터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다 2015년 집행위원장으로 위촉됐다. 2017년 위원장에서 자진 사퇴한 후 4년 가까이 대중에 모습을 비추지 않았다. 지난해 7월 연상호 감독의 넷플릭스 영화 ‘정이’에 출연한다고 발표하며 연기 활동을 재개했다. 10월 제3회 강릉영화제 개막식에 깜짝 등장하며 4년 만에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지난 5일 서울 압구정동 자택에서 뇌출혈로 쓰러져 심정지 상태로 병원으로 이송된 후 의식을 찾지 못하다 끝내 일어나지 못하게 됐다. 고인의 영화 복귀작으로 유작이 되어버린 ‘정이’는 올해 공개 예정이다.

영화계는 영화인장으로 장례를 치를 예정이다. 김동호(전 부산영화제 이사장) 강릉영화제 이사장을 위원장으로 장례위원회를 꾸렸다. 배우 김지미 박정자 박중훈 손숙 신영균 안성기, 감독 임권택 정지영 정진우, 제작자 황기성씨가 고문이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2층 17호. 조문은 8일부터다. 발인 11일.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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