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궁합' 최악, 그래서 헤어진 그들은...

입력
2022.05.03 04:3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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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제훈 '스포일러'

편집자주

단편소설은 한국 문학의 최전선입니다. 하지만 책으로 묶여 나오기 전까지 널리 읽히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국일보는 '이 단편소설 아시나요?(이단아)' 코너를 통해 흥미로운 단편소설을 소개해 드립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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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라는 질문에 답해야 하는 때가 오고야 말았다. 부모님은 기회만 생겼다 하면 '결...' 얘기를 꺼내려 하고, 주변의 친구들도 하나둘 기혼자의 세계로 떠나간다. 여전히 결혼에 대한 본질적 의문이 풀리지 않은 채라, 결혼을 앞둔 친구에게 물었다. “어떻게 영원히 함께하리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을 수 있어? 인생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하고 끝낼 수 있는 동화가 아니잖아.” 친구는 그런 한심한 질문은 처음 들어본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그걸 다 알고 하면 그게 결혼이겠니? 그냥 믿는 거지.”

그런데 만일, 결혼의 결말이 ‘해피 엔딩’일지 ‘새드 엔딩’일지 정말로 알 수 있게 된다면 어떨까? 그러면 우리는 후회 없는 선택을 내릴 수 있게 될까? 쓺 14호에 실린 최제훈 작가의 ‘스포일러’는 그 미래를 엿본 한 커플의 이야기다.

인간 게놈 데이터를 민간에서 상업적 용도로 활용할 수 있게 된 미래의 어느 날, 유전자 샘플을 활용한 ‘VR 타임 시뮬레이션’이 성행하게 된다. 나에게 어떤 직업이 어울릴지, 어떤 질병을 조심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더 이상 사주, 신점, 타로, 관상, 손금, 별자리 운세 같은 두루뭉술한 샤머니즘에서 구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높고 정확도도 담보되는 분야가 바로 ‘유전자 궁합’이다. 상대와 나의 타고난 기질이 평생 한 공간에서 부딪힐 때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가상으로 체험해볼 수 있는 것이다. 유전자 궁합 시뮬레이션이 대중화하며 결혼율은 급감하지만 이혼 사유 통계에서 ‘성격 차이’의 비중은 줄어들게 된다.

최제훈 소설가. 문학실험실 제공

최제훈 소설가. 문학실험실 제공


7년을 연애한 한규와 근영은 결혼을 앞두고 유전자 궁합을 보기로 한다. 그 결과, 둘은 신혼여행에서부터 싸우기 시작해 때 이른 권태기, 서로를 소 닭 보듯 하며 보내는 하루하루, 육아 전쟁, 끝없는 짜증과 신경전을 겪게 된다.

‘재미 삼아’라는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몇 번을 반복해도 최악을 거듭할 뿐인 결과를 무시하기는 힘들었다. 이것이 단지 ‘가능성’에 불과하다는 것, 인생은 확률 게임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기계가 보여준 가상의 미래는 떨쳐내기 힘들었다. 서로의 매력 요소였던 전혀 다른 취향은 이혼의 씨앗처럼 보였고, 시뮬레이션 결과를 무시하고 결혼을 강행했다가 결국은 갈라서게 된 주변 사례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평소에는 자잘한 돌부리에 불과했던 작은 다툼 역시 미래에 대한 예측으로 보일 뿐이다. 결국 둘은, 헤어지기로 결심한다.

이후 한규와 근영은 각각 다른 사람과 결혼한다. 아이를 낳고, 배우자의 외도를 경험하고, 이혼하고, 갱년기를 겪고, 죽을 고비를 넘기며 나이 들어간 둘은 훗날 많은 세월이 흘러 재회하게 된다. 그리고 오래전, 둘이 함께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린다.

사실 이 소설에는 작은 반전이 하나 있다.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자세히 말할 순 없지만 이 한 가지만은 말할 수 있다. 어느 쪽을 선택하건 '과거를 후회하는' 미래는 정해져 있다는 것.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후회'를 선택할 것인가?

한소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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