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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軍 천인공노할 성범죄에… 우크라에 응급피임약 보낸 유엔 자문기관

입력
2022.04.29 16:55
수정
2022.04.29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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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PF, 2880회분 피임약 우크라 전역으로
러시아군 성범죄가 불러온 고육지책
우크라 당국 "전쟁범죄 8600건 확인"

21일 러시아군에 포위돼 함락 위기에 놓인 우크라이나 남동부 마리우폴에서 자포리자로 탈출한 여성이 국내 이재민 등록센터에 도착한 뒤 눈물을 훔치고 있다. 자포리자=로이터 연합뉴스

21일 러시아군에 포위돼 함락 위기에 놓인 우크라이나 남동부 마리우폴에서 자포리자로 탈출한 여성이 국내 이재민 등록센터에 도착한 뒤 눈물을 훔치고 있다. 자포리자=로이터 연합뉴스


유럽 비영리단체와 구호 활동가들이 우크라이나로 응급피임약을 보내고 있다. 러시아군의 반인륜적 범죄 희생양이 된 우크라이나 여성들이 원치 않는 임신이라는 또 다른 고통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21세기 추악한 전쟁범죄가 불러온 안타까운 조치다.

28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 등에 따르면, 글로벌 비영리단체 국제가족계획(IPPF)은 최근 응급피임약 2,880회 분을 우크라이나 각지의 병원에 보냈다. 임신 24주까지 투여 가능한 의료용 임신중절약도 전달했다.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두고 세계 150개국에서 성평등과 모성보호를 목표로 활동하는 유엔 자문기관 IPPF가 우크라이나에 피임약을 보내는 이유는 러시아군의 성범죄가 심각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전쟁 두 달이 지나면서 속속 드러난 러시아군의 만행은 전 세계의 공분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실제 성인 여성뿐 아니라 소녀, 심지어 한 살배기 아이까지 입에 담기 힘든 성범죄 희생자가 됐다. 이달 11일 하루에만 한 마을에서 여성 12명이 러시아군에 성폭행당하기도 했다. 러시아군이 퇴각한 수도 키이우 북부 도시 부차의 집단 매장지에선 성폭행당한 뒤 살해된 여성의 시신도 잇따라 발견됐다. 죽고 다치는 전쟁의 한복판에서 여성들에겐 성폭력까지 더해지고 있는 셈이다. “러시아가 성폭행을 무기로 사용하고 있다”는 호소까지 나온다. 일부 여성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피란길에 콘돔과 응급피임약을 챙기고 있다.

앞으로 피해 규모는 더 커질 것이란 암울한 전망도 나온다. 제이미 나달 유엔인구기금(UNFPA) 우크라이나 지부 대표는 “현재 공개된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지적했다.

응급피임ㆍ임신중절 약물이 전시 성범죄를 근절하거나 피해 여성들의 정신적 충격을 덜어줄 리 만무하다. 다만 원하지 않는 임신을 막아 더 큰 불행을 겪지 않도록 하는 고육지책이다. 줄리 태프트 IPPF 인도주의 국장은 “성폭력 피해자를 치료하는 시기는 매우 중요하다”며 “사건 발생 닷새 내에 꼭 투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약물 수요는 우크라이나 서부보다 키이우 외곽 도시와 동부 마리우폴, 하르키우 등의 병원에서 높다. 키이우 북부 도시의 병원에 응급피임약을 전달한 구호단체 패러크루의 한 자원봉사자는 “병원 직원으로부터 다수의 성폭행 피해자들이 치료받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다른 인권단체들도 힘을 보태고 있다. 폴란드의 여성ㆍ가족권리단체 페더라와 노르웨이 인권활동가 등은 해당 의약품을 우크라이나로 보내기 위해 자국 보건당국을 설득하고 있다. 가디언은 “유엔 역시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같은 성병을 예방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10개 지역 19개 병원에 노출 후 예방(PEP) 키트 등을 보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의 전쟁범죄는 끝없이 드러나고 있다. 이날 우크라이나 정부는 지금까지 △민간인 살해 △고문 △성폭행 등 무려 8,600건이 넘는 전쟁범죄 혐의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리나 베네딕토바 우크라이나 검찰총장은 “전쟁범죄는 우크라이나 국내 법원에서 기소될 것이지만 최종 목표는 국제 법정에서 유죄판결을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밝혔다.

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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