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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문 대조시대의 개막

입력
2022.05.02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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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베르티옹 식별법

윌 웨스트(왼쪽)와 윌리엄 웨스트의 경찰 피의자 식별 사진(머그샷). rarehistoricalphotos.com

윌 웨스트(왼쪽)와 윌리엄 웨스트의 경찰 피의자 식별 사진(머그샷). rarehistoricalphotos.com

1903년 5월 1일 미국 워싱턴주 리븐워스(Leavenworth) 교도소에 살인죄로 기소된 윌리엄 웨스트(William West)라는 흑인 청년이 수감됐다. 교도소 측은 절차에 따라 수감자의 신체 검사를 진행했다. 키나 몸무게와 달리 성인이 된 뒤로는 거의 바뀌지 않는 5개 신체 특징, 즉 얼굴 길이와 이마 넓이, 가운뎃손가락 길이, 왼발 길이, 팔목에서 가운뎃손가락까지의 길이(cubit)로 개인의 신원을 확인하는 이른바 '베르티옹 측정법(Bertillon measurements)'이었다.

측정 결과 웨스트의 베르티옹 수치는 살인 전과자 윌 웨스트(Will West)의 수치와 동일했고 둘의 외모 역시 흡사했다. 경찰은 동일인으로 확신했다. 하지만 교정 당국은 윌 웨스트가 이미 다른 범죄로 교소도에 수감돼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확인했다. 까다로운 확인 절차 때문에 기피되던 지문 대조 결과 둘은 다른 인물로 판명됐다. 재검사 결과 둘의 왼발 길이가 7㎜가량 차이가 난다는 사실이 확인됐지만, 베르티옹 측정법의 신뢰도는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다.

베르티옹 수치는 오늘날의 지문이나 DNA 정보처럼, 당시 널리 통용되던 확정적 생체정보로, 프랑스 경찰관 겸 생체인식 연구가 알퐁스 베르티옹(Alphones Bertillon, 1853~1914)이 19세기 말 고안한 기법이었다. 베르티옹 측정법은 수사·범인 식별뿐 아니라, 백인들의 눈에 외모로 잘 구분이 안 가던 중남미나 아프리카 식민지 주민 구분에도 널리 쓰였다. 미국에서도 20세기 초까지 전원 백인이던 경찰은 흑인 성노동자 등 범죄자 식별에 활용했다.

사실 지문의 고유성은 훨씬 전부터 인정받았지만 대조 식별의 어려움 때문에 일선에서 외면돼 왔다. 웨스트 사건 이후 비로소 지문 검사가 보편화·표준화했고, 감식대조 기법도 빠르게 발전했다. DNA가 수사 및 개인 식별 수단으로 활용된 것은 1986년(한국은 1991년)부터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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