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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해안선' 지우는 러… 몰도바까지 국경 연결 야욕

입력
2022.04.24 19:25
수정
2022.04.24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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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최대 항구도시 오데사 미사일 공격
도시 무너지면 모든 해안 러시아 손에
러, 몰도바 겨냥은 푸틴의 야심찬 목표
"트란스니스트리아 제2 돈바스 될 수도"
젤렌스키 러 향해 '개자식' 비판하면서도
휴전 위해 푸틴 대통령에 평화회담 제안

23일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 도시 오데사에서 구조대원들이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으로 무너져내린 아파트에서 시민들을 구조하고 있다. 오데사=로이터 연합뉴스

23일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 도시 오데사에서 구조대원들이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으로 무너져내린 아파트에서 시민들을 구조하고 있다. 오데사=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해안선 지우기’를 본격화하고 있다. 아조프해로 향하는 남동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을 사실상 점령한 데 이어, 흑해와 맞닿은 남부 핵심 도시에도 대규모 공습을 퍼부으며 우크라이나를 내륙국가로 만들려 하고 있다. 남부 지역을 인접국 몰도바의 친러시아 지역과 연결하려는 야욕마저 노골화하면서 우크라이나의 비극이 이웃국가로 확산할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이 나온다.

러 공격에 생후 3개월 여아까지 사망

24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CNN방송 등에 따르면, 러시아는 전날 우크라이나 북동부와 동부, 남부 곳곳에서 공습과 폭격을 쏟아 부었다. 러시아군은 남부 오데사를 향해 최소 6발의 순항미사일을 발사했다. 이곳에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제공한 무기가 보관돼 있다는 게 이유다. 러시아는 군수물자 보관 시설만 ‘정밀 공격’했다고 주장했지만 미사일이 민간 주거 시설을 타격하면서 생후 3개월 여아를 포함, 최소 8명이 숨졌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그 아기가 태어난 지 1개월이 됐을 때 전쟁이 시작됐다”며 “그들(러시아군)은 개자식들이다”라고 분노했다.

오데사는 우크라이나 해운 수출입의 대부분을 처리하는 최대 항구도시다. 러시아 손에 넘어가면 교통과 물류가 사실상 마비된다. 게다가 러시아군은 이미 마리우폴과 또 다른 남부 해안 도시 헤르손을 점령한 상태다. 오데사까지 무너지면 아조프해부터 흑해까지 우크라이나의 모든 해안선이 사라진다. 해상 진출로를 봉쇄당해 ‘내륙국가’로 쪼그라들게 된다는 얘기다.

지정학적 위기도 고조되고 있다. 러시아는 오데사를 서진(西進) 교두보로 삼고 있다. 오데사를 점령한 뒤 러시아군이 주둔 중인 몰도바 내 친러 성향이 강한 트란스니스트리아와 연결한다는 계획이다. 러시아는 앞서 22일 “남부 통제는 트란스니스트리아로 나아가는 또 다른 출구를 만들어준다”며 다음 타깃이 몰도바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더 야심 찬 공격 목표를 드러냈다”고 진단했다.

러시아의 목표가 현실이 될 경우 우크라이나와 몰도바는 물론 유럽 전역이 격랑 속으로 빠져든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군에 의해 동ㆍ남ㆍ서남부가 포위된다. 가뜩이나 허약한 경제는 물론, 유럽 내 입지가 취약해 질 수밖에 없다. 현재 트란스니스트리아 내 친러 분리주의 세력이 독립을 요구하는 몰도바는 포화에 휩싸일 위기다. 푸틴 대통령이 동부 돈바스 지역 해방과 친러 세력 보호를 명분 삼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처럼 이곳을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국제사회에서 트란스니스트리아가 ‘제2의 돈바스’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고 지적했다. 몰도바까지 러시아가 진출할 경우 유럽은 절충지역 없이 러시아군과 맞대야 하는 일촉즉발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24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교회에서 열린 부활절 예배에서 한 병사가 촛불을 밝힌 뒤 기도하고 있다. 키이우=로이터 연합뉴스

24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교회에서 열린 부활절 예배에서 한 병사가 촛불을 밝힌 뒤 기도하고 있다. 키이우=로이터 연합뉴스


젤렌스키, 푸틴에 "전쟁 끝내기 위해 만나자"

우크라이나 동부도 포성과 화염으로 뒤덮였다. 돈바스 지역에서는 매일 격렬한 전투가 이뤄지고 있다고 CNN이 전했다. 전날에도 루한스크주(州)의 소도시 기르스케와 북동부 하르키우에서는 러시아군의 포탄에 각각 시민 6명, 3명이 사망했다. ‘최후의 항전’을 이어가는 마리우폴 아조우스탈 제철소에서는 부활절인 24일 러시아군의 공습이 재개됐다. 우크라이나군도 필사적 방어에 나섰다. 영국 국방부는 이날 “러시아가 동부에서 영토적 이득을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군의 저항에 상당한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정부군이 남부 헤르손에서 러시아군 장성 2명을 사살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은 바람 앞 등불이다. 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남부를 손에 넣기 위해 흑해 연안부대를 포함해 대대적인 병력 재정비에 나섰다”고 밝혔다.

교착상태에 빠진 평화협상은 재개 가능성이 보이질 않는다. 그럼에도 젤렌스키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에게 협상 테이블로 나올 것을 촉구했다. 그는 “전쟁을 시작한 사람이 전쟁을 끝낼 수 있다”며 “평화협상으로 이어질 수만 있다면 푸틴 대통령과 만나는 것이 두렵지 않다”고 강조했다. △러시아군이 마리우폴에서 저항하는 우크라이나군을 살해하거나 △점령지에서 분리주의 국가를 세우는 가짜 투표를 실시할 경우 협상할 수 없다는 조건을 달기는 했지만, 전쟁 종식을 위해서는 정상회담밖에는 길이 없다고 본 셈이다. 일각에서는 푸틴 대통령이 새로운 목표가 생긴 이상 평화협상은 당분간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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