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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우크라 남부까지 완전 점령할 것”… 몰도바로 확전 시사

입력
2022.04.22 19:35
수정
2022.04.22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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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군 고위급 "군사작전에 우크라 남부 장악 포함"
남부와 이어진 몰도바 내 친러 점령지 진격 계획
헤르손 독립투표 계획·마리우폴에선 러시아 교육
美 1조원 무기 추가 지원… 돈바스 맞춤 드론 포함

20일 우크라이나 남동부 항구도시 마리우폴 외곽에 위치한 아조우스탈 제철소 위로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날 우크라이나군의 최후 저항지인 아조우스탈을 공격하는 대신 봉쇄하라고 지시했다. 마리우폴=로이터 연합뉴스

20일 우크라이나 남동부 항구도시 마리우폴 외곽에 위치한 아조우스탈 제철소 위로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날 우크라이나군의 최후 저항지인 아조우스탈을 공격하는 대신 봉쇄하라고 지시했다. 마리우폴=로이터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남동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을 사실상 점령한 러시아가 다음 목표로 동부 돈바스 지역은 물론 우크라이나 남부 일대까지 완전히 장악할 것이라고 선포했다. 2014년 병합한 크림반도와 돈바스를 잇는 육로 회랑을 완성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남부와 맞닿은 이웃 국가 몰도바까지 진격하겠다는 의미다. 몰도바에는 친러시아 분리주의 지역인 트란스니스트리아가 있다.

22일(현지시간) 타스통신 등에 따르면, 러시아 중부군관구 부사령관 루스탐 민네카예프 준장은 이날 스베르들롭스크주(州) 군수업체연합 연례회의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특별 군사작전 2단계 과제 가운데 하나는 돈바스 지역과 남부 지역에 대한 완전한 통제를 확보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돈바스 통제는 크림반도와 연결되는 육상 회랑을 완성하게 해 주고, 남부 통제는 트란스니스트리아로 나아가는 또 다른 출구를 만들어 줄 것”이라고 말했다.

트란스니스트리아는 1990년 몰도바에서 분리ㆍ독립을 선언한 미승인 국가다. 주민 50여만 명 중 30%가 러시아인이다. 러시아는 1992년 몰도바와 맺은 협정에 따라 이곳에 평화유지군 명목으로 병력 수천 명을 주둔시키고 있다. 이달 초 우크라이나는 수도 키이우 일대에서 철수한 러시아군이 동부와 남부뿐 아니라 트란스니스트리아에도 병력을 집결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트란스니스트리아는 우크라이나 최대 물동항인 서남부 도시 오데사와 가깝다.

이미 러시아는 앞서 점령한 남부 도시 헤르손과 자포리자주 소도시 등을 강제 병합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전날 영상 연설에서 “러시아가 남부 점령지에서 독립을 위한 주민 투표를 조작하려 한다”며 “만약 그들이 당신에게 설문지를 작성하고 여권 자료를 어딘가에 남겨 두라고 요구하더라도 절대 따르지 말라”고 당부했다.

마리우폴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포착됐다. 미국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제 마리우폴에서 평화로운 삶을 시작하고 주민들을 집으로 돌려보낼 때가 됐다”고 말했다. 초중고 학교들도 러시아 교과 과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인 안드레이 투르차크 통합러시아당 사무총장은 최근 마리우폴 학교들을 방문한 뒤 “앞으로 러시아 교과서를 더 많이 보급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돈바스 내 친러 반군 지역인 자칭 도네츠크인민공화국 데니스 푸실린 수장도 자신들이 직접 발행한 졸업장을 학생들에게 수여할 것이라고 했다.

앞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마리우폴을 해방시켰다”고 주장하면서 우크라이나군의 최후 저항지인 아조우스탈 제철소에서 “파리 한 마리 빠져 나오지 못하게 봉쇄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미국 국무부는 “우크라이나군은 영토를 지키고 있다”며 러시아 측 주장을 “허위 정보”라고 일축했다. 제철소에서 항전 중인 스비아토슬라우 팔라마르 아조우연대 부사령관도 영국 BBC방송 인터뷰에서 “우리가 이곳에 있는 한, 마리우폴은 우크라이나 땅”이라며 “아무도 항복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제철소에는 여전히 포탄이 쉼 없이 쏟아지고 있다. 지상 시설은 대부분 파괴됐고, 지하공간에 대피한 주민 일부가 무너진 건물 아래 갇혔다. 사망자와 부상자도 상당히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팔라마르 부사령관은 “피란민 중에는 생후 3개월 아기도 있다”며 “민간인들이 나갈 수 있도록 제3국이나 국제기구가 안전을 보장해 달라”고 촉구했다.

마리우폴의 비극은 위성사진에서도 확인된다. 미국 위성업체 맥사테크놀로지가 공개한 사진을 보면, 마리우폴 서쪽으로 19㎞ 떨어진 만후시 마을에 집단 매장지가 조성돼 있다. 지난달 23~26일 처음 포착된 가로 180㎝ㆍ세로 3m 크기 구덩이들은 점점 많아져 이달 6일에는 300개로 늘었다. 마리우폴 시의회는 “최대 9,000명이 묻혔을 것”이라며 “전쟁범죄를 은폐하려는 증거”라고 분노했다.

서방은 마리우폴 점령으로 기세가 살아난 러시아를 저지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공격 무기 수송을 서두르고 있다. 미국은 예고했던 대로 일주일 만에 또다시 8억 달러(약 1조 원) 규모 추가 군사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이번 목록에는 155㎜ 곡사포 72기, 포탄 14만4,000발, 돈바스 전투에 맞춤형으로 개발된 전술 드론(무인기) 121대 등이 포함됐다. 영국도 장갑차 120대 지원 방침을 밝히며 “영국과 폴란드에서 우크라이나 군인들에게 무기 사용법을 훈련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26일에는 독일 람슈타인 공군 기지에서 미국과 동맹국들이 국방장관 회담을 열고 우크라이나 군사력 강화 방안을 집중 논의한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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