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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평등'은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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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2020년은 인구학자들에게 특별한 해였을 듯하다. 사상 최초로 출생자보다 사망자가 많아 인구가 감소하는 이른바 데드 크로스(Dead Cross) 현상이 나타난 해이기 때문이다. 이 해 연말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서는 5년 단위 저출산 정책 청사진인 '4차 저출산ㆍ고령사회기본계획(2021~2025)'도 발표했다. “알맹이가 없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위원회가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패러다임으로 ‘성평등하고 공정한 사회’를 제시했던 건 진일보한 대목이다.
남녀가 함께 일하고 함께 아이를 돌보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비로소 저출산 문제가 해결된다는 문제의식이 담겼다. 성평등한 육아환경 조성을 위해 부모 모두 육아휴직을 쓰는 경우 한쪽만 쓰는 경우보다 육아휴직 급여 수준을 2배로 올리고 직장 내 성평등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기업의 성차별 격차를 공개하는 성평등 경영공표제 도입 등을 위원회가 제안했던 이유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얼마나 성평등한 환경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 여성가족부가 지난 19일 발표한 5년 단위 통계인 ‘양성평등 실태조사(2021)’를 들여다보자. 외견상 한국사회는 평평한 사회로 전진하고 있다. 5년 전 21.0%였던 ‘남녀가 평등하다’는 응답자 비율은 34.7%로 높아졌고 ‘여성에게 불평등하다’는 응답자 비율은 62.6%에서 53.4%로 줄었다. 사회 전반으로 성평등 의식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돌봄 부담(육아)의 성별 불평등은 변화가 없거나 오히려 뒷걸음질했다. ‘자녀돌봄의 일차적 책임이 여성에게 있다’는 데 동의하는 비율은 17.4%로 5년 전(53.8%)의 3분의 1로 줄었지만 ‘숙제 또는 공부지도, 등하교 동행, 부모참여 활동’ 등 돌봄의 세목(細目)에 대해 ‘자주 또는 매우 자주한다’는 여성들의 응답은 5년 전보다 크게 늘었다.
남성 참여도 늘었지만 ‘때때로 한다’는 항목에 집중됐다. 쉽게 말하면 퇴근한 아빠들은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기는 하지만 아이가 좋아하는 책이 책꽂이 어디에 꽂혀 있는지는 잘 모르고, 주방의 세제가 떨어지면 채워넣기는 하지만 여분의 세제가 창고 어디에 있는지는 아내에게 물어야 하는 식이다. 맞벌이라고 해도 육아ㆍ가사노동의 핵심 매니저로서 여성 책임은 그대로라는 얘기다.
이는 입사할 때는 남성과 대비해 별 차이가 없었던 여성의 임금이 아이가 부모의 손길을 필요로 할 무렵부터 급전 직하하고 종내 상당수 여성들이 직장을 떠나는 현상과 무관치 않다. 자녀 출산을 망설이는 이유로 ‘하는 일에 지장이 있을 것 같다’는 항목을 꼽은 여성들의 응답이 남성들의 2배나 되는 데는 다 까닭이 있다.
지방선거가 목전에 다가왔고 여대야소인 국회 상황을 감안해서인지 새 정부는 공약이었던 여성가족부 폐지를 일단 유보했다. 하지만 머지않은 장래에 여가부를 미래가족부 등 가족ㆍ인구문제를 전담할 부처로 전환시키려 한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는 인구문제를 전담하는 태스크포스(TF)도 꾸려졌다. 하지만 새 정부에서 성평등 정책은 말만 꺼내는 것만으로도 주홍글씨가 찍히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진심으로 궁금하다. 국제적으로도 낮은 한국의 성평등 수준이 심각하지 않다며 “여성 인권만 높여달라고 하면 우리가 얻을 게 뭐냐”고 반문하는 전문가나 “저출산이 심화한 데는 지금까지 젠더 관점에서 접근했기 때문”이라고 공개적으로 발언하는 전문가를 가족ㆍ인구 정책의 자문그룹으로 중용하는 새 정부에 참신한 저출산 해법을 기대할 수 있을까. 한국사회가 여성에게 불평등하다는 진실을 외면하고 심지어 남성에게 불평등하다고 주장하는 젊은 남성들에게 아이를 낳도록 하는 마법을 부리지 않는 바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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