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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의대로 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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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하버드대 출신의 30대 제1야당 대표는 시험이 가장 공정하다고 한다. 시험 점수로 드러난 능력이 곧 실력이다. 그가 대표가 된 이래 벌써 두 차례 당 내부 시험이 치러졌다. 이제 선거에 나가려면 시험부터 붙고 봐야 한다.
능력주의를 앞세우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도 매한가지다. 초대 장관 후보자 19명 가운데 서울대 출신이 10명, 그중 법대가 5명이다. 그 타당성을 떠나 그러잖아도 만연한 학벌과 능력주의를 정치에 도입하는 모습은 씁쓸한 현실이다.
모순적인 것은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자녀의 의대 편입학 의혹이다. 바로 우리 사회의 학벌과 능력주의 문제를 명징하게 폭로한 사례다. 정 후보자 의혹은 여러 점에서 ‘조국 사태’의 판박이다. 그의 두 자녀는 경북대 의대에 편입학했고, 조국 전 장관의 딸은 부산대 의전원에 입학했다. 제기된 의혹들 역시 그 과정의 공정성에 대한 것이다. 부모가 절차에 개입한 이른바 ‘아빠 찬스’ 정황도 마찬가지다.
능력이 우월할수록 큰 파이를 차지하는 게 당연시되는 세상이긴 하다. 출신 배경이 아니라 능력, 실력의 차이인 만큼 차별은 당연하고 불평등은 정당화된다. 흔히 말해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되는 사회다. 이런 결과의 차등은 과정의 공정에 의해서만 합리화된다. 그것이 깨지면, 능력이 부족한데도 큰 파이를 차지하면 부정의, 불공정이 되는 것이다. ‘조국 사태’도 불평등은 참아도 불공정은 못 참는 우리 사회의 단면이었다. 그리고 대법원의 조국 사태에 대한 유죄 판단은 그런 관행을 더는 용인해선 안 된다는 주문일 것이다.
두 의혹은 우리 사회 병리현상이 된 의대병(病) 역시 드러내고 있다. 정 후보의 문제가 된 두 자녀 모두 의대로 간 것을 달리 이해할 수는 없다. 학벌사회에서 의대는 그 최정점에 위치해 있다. '인 서울'의 7대 의대 정시는 수능성적 200등대는 돼야 원서를 쓸 수 있다. 수도권 유명 사립고의 작년 수석 졸업자는 10위권 후반대 의대에 합격하자 서울대 등록을 포기했다.
의대만큼 능력주의로 포장되는 곳도 없다. 물론 의학을 공부하는 것은 엄청난 자산이긴 하다. 의학지식을 활용해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있고, 어느 사회에서든 의사는 사회적 존경과 경제적 대우가 보장된다. 하지만 우수 인력들의 의대 쏠림도 인력 낭비이고, 사회적 재난에 가깝다.
윤 당선인 측은 법조인 시각으로 이번 사안을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의혹에 대한 부정의 팩트를 여론에 요구한다. 조국 사태에서 문재인 대통령도 그랬다. 하지만 위법이나 불법 여부로만 판단하면 사회적 상식, 국민 감정과 멀어지게 된다. 능력주의와 아빠 찬스가 결합한 것이 실력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또한 우리 사회는 공정의 덫에 포획됐다고 할 만큼 공정에 대한 집착이 유달리 강하다.
법의 잣대로 사회 문제가 해결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게 지금까지 경험이고, 정치가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논문 ‘왜 부모를 잘 둔 것도 능력이 되었나’에서 이미 우리 사회는 변형된 귀족적 세습주의 상태에 도달해 있다는 진단을 내린 바 있다. 의료현장의 동료 의사들이 정 후보자의 의혹에 더 뜨겁게 반발하는 것도 이런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세계는 캄브리아기 대폭발에 가까운 기술 변화의 시대를 지나고 있다. 젊은 기업가들이 세상의 주인을 자처하며 새로운 계층으로 출현하는 세상이다. 승자 독식의 정치와 전문직역, 엘리트들의 선민의식 등을 떠받쳐온 학벌주의, 능력주의는 시한이 다가오는 화석 에너지에 비유되는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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