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돈바스에 '살인병기' 2만 명 투입… 용병 등장에 더 잔혹해진 전쟁

입력
2022.04.2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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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병기업 바그너, 시리아·체첸 용병 등장
민간인 학살 책임 전가·러軍 전사율 감소

15일 우크라이나 남동부 마리우폴에서 체첸공화국 병사들이 폐허가 된 도시를 순찰하고 있다. 마리우폴=로이터 연합뉴스

15일 우크라이나 남동부 마리우폴에서 체첸공화국 병사들이 폐허가 된 도시를 순찰하고 있다. 마리우폴=로이터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대규모 전면전에 나선 러시아가 잔인하기로 악명 높은 용병 2만 명을 전선에 투입했다. 55일 동안 이어진 전쟁에서 고전을 면치 못한 러시아군은 전세를 뒤집기 위해 중동, 아프리카에서 전투 경험을 쌓은 병력을 대거 끌어왔다. 통제되지 않는 ‘살인 병기’ 투입으로 전쟁은 한층 더 잔혹해질 거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외인부대 동원은 전투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잔혹행위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을 회피하기 위한 러시아의 '꼼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19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은 유럽 당국자를 인용,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돈바스에 용병 1만~2만 명을 투입했다고 전했다.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 그룹을 비롯, 시리아와 리비아에서 소집된 전투원과 체첸공화국 특수부대원이 그 대상이다. 각 집단의 세부 규모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서방 정보기관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비밀 병기’로 알려진 바그너 그룹의 경우 1,000여 명 이상을 돈바스로 보냈다고 분석한다. 이들은 ‘죽음은 우리 일’이라는 모토처럼 지구촌 곳곳에서 잔혹한 범죄를 저질러왔다. 최근 유엔은 보고서에서 그룹 소속 용병이 말리에서 민간인 30여 명을 묶고 휘발유를 부어 산 채로 불태웠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시리아 병력은 전체 용병 중 규모가 가장 큰 것으로 보인다. 전날 라미 압둘라흐만 시리아인권관측소 대표는 지금까지 2만2,000명의 시리아인이 러시아 측에 합류했다며 이 중 상당수가 동부 지역에 배치됐을 것으로 내다봤다. 시리아군 최정예 부대로 알려진 제25특수임무부대 소속 700명 역시 러시아군과 함께 싸우기 위해 우크라이나를 향했다고 덧붙였다. 체첸자치공화국 용병은 이미 남동부 항구도시 마리우폴 교전에 대거 투입된 상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8일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화상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모스크바=AP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8일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화상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모스크바=AP 연합뉴스


용병 가세는 러시아의 다급함을 여실히 드러낸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군의 결사항전에 부딪혀 침공 한 달 만에 병력의 20%를 잃었다. 돈바스 지역 공세를 위해 지난달 신병을 소집하는 법령에 서명하긴 했지만, 훈련에 수개월이 소요되는 탓에 즉시 전장에 투입할 수 있는 국내외 무장집단에까지 눈을 돌린 셈이다.

용병 고용은 ‘병력 충원’ 이상의 의미도 있다. ‘전쟁’과 ‘살상’을 목표로 돈을 위해 모인 용병은 상대적으로 윤리적 죄책감이 낮기 때문에 민간인 학살 같은 위협 전략에 쉽게 동원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잔혹행위를 두고 국제사회 비판 여론이 높아지더라도, 용병 개인의 일탈로 책임을 돌리는 것도 가능하다. 게다가 전장에서 러시아군 전사자 수에도 집계되지 않아 국내 여론 악화도 막을 수 있다. 안팎으로 수세에 몰린 푸틴 대통령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은 카드라는 의미다. 미국 외교안보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의 선임 연구원인 숀 맥페이트 조지타운대 교수는 “전쟁의 책임을 부인할 수 있고, 용병의 죽음에 대해 러시아 내 별다른 동요가 일지 않기 때문에 푸틴 대통령이 선호한다”고 분석했다.

전장의 비극은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용병은 정규군이 아닌 탓에 상부의 통제가 쉽지 않다.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채 사상적으로 경도된 이들이 무력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인권 유린 행위가 발생할 공산도 크다. 영국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는 “용병들이 우크라이나에서 전투 흐름을 바꾸긴 어렵지만 전쟁을 더욱 잔혹하게 만들 수는 있다”고 우려했다.

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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