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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 펼쳐지는 무대 '데스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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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칼럼니스트인 박병성 월간 공연전산망 편집장이 한국일보 객원기자로 뮤지컬 등 공연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일본의 뮤지컬 시장은 2015년 이후 빠르게 성장했다. 그 중심에 있던 것이 2.5차원 뮤지컬이다. 만화나 애니메이션 등 평면적인 2차원의 콘텐츠를 무대라는 3차원 공간에 옮겨 놓은 뮤지컬이라고 해서 2.5차원 뮤지컬이라고 한다. 일본의 2.5차원 뮤지컬은 기존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팬들을 공연 관객으로 끌어들여 시장을 확장시켰지만 원작에 대한 관심이 없는 관객에게는 원작에 치우친 표현 방식이 오히려 방해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뮤지컬 '데스노트'는 2.5차원 뮤지컬에 속하지만 원작의 팬들은 물론 공연을 좋아하는 애호가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정의감이 강한 주인공 라이토는 사신이 떨어뜨린 데스노트를 손에 넣게 된다. 데스노트에 이름을 적으면 이름이 적힌 사람을 살해할 수 있다. 라이토는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할 범죄자의 이름을 데스노트에 적는다. 의문의 죽음이 이어지자 미스터리한 천재 탐정 L(엘)이 날카로운 추리로 사건의 진실에 바짝 다가선다. 뮤지컬 '데스노트'는 사신의 노트를 손에 넣은 천재 학생 라이토와 천재 탐정 엘의 팽팽한 두뇌 싸움으로 긴장감 넘치는 승부를 펼친다. 승부를 예측할 수 없는 이들의 싸움을 지켜보는 재미가 작품의 묘미다.
뿐만 아니라 작품은 ‘인간이 절대 권력을 가질 자격이 되는가’라는 심도 깊은 질문을 제시한다. 죄인을 벌하던 라이토는 자신의 목적에 장애물이 되는 것을 제거하는 용도로 데스노트를 사용하기에 이른다. 절대 권력을 가진 인간은 쉽게 타락했다. 그의 상대인 엘 역시 승부를 위해 일말의 망설임 없이 희생양을 만들어낸다. 자신만의 정의감에 빠진 라이토와 오직 승부에 집착하는 엘의 대결은 도덕과 윤리가 사라진 게임에 불과하다. 신이 되려고 했던 라이토는 과연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 작품은 스스로 신이라고 생각하는 인간의 오만이 쉽게 부서지는 모래성일 뿐임을 증명하며 마무리된다.
만화 '데스노트'는 일본에서만 3,000만 부 이상 발행되었으며 전 세계 35개국의 언어로 번역된 히트작이다. 2006년에는 같은 해에 제작된 영화 1, 2편 역시 큰 인기를 누렸다. 뮤지컬 '데스노트'는 만화와 영화 속에서 툭 튀어나온 듯한 싱크로율 높은 인물들로 원작의 명장면을 재현한다. 목이 넓은 흰 티를 입고 구부정한 자세로 의자에 올라가 고양이처럼 웅크리고, 손가락 두 개만 사용해 과자를 집는 엘이나 개구쟁이 악동 같은 사신 듀크, 그리고 침착하고 어딘지 슬픈 감정에 젖어 있는 사신 렘 등 의상, 태도, 눈빛, 손끝 하나까지 완벽하게 연출해 원작의 인물을 재현하려고 애썼다.
무엇보다도 이번 '데스노트'에서 빛났던 것은 무대 벽면은 물론 천장과 바닥까지 삼면을 영상으로 꾸민 오필영의 무대였다. 하늘 위 신계의 세계부터 시부야의 거리, 폐공장, 고등학교 운동장 등 잦은 공간 변화를 수월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공간을 바라보는 시각을 다채롭게 해 무대에서는 표현이 어려운 다양한 시각을 관객들이 경험하도록 했다. 뮤지컬 넘버 ‘비밀과 거짓말’의 장면에서는 라이토의 방, 엘의 은신처, 경찰본부 영상으로 세 공간을 분할하고 그곳에서 긴박하게 벌어지는 긴 시간의 대결과 갈등을 연극적으로 압축해 영상의 장점과 연극의 장점을 모두 살려 연출해 냈다. 단조로울 수 있는 테니스 대결 장면 역시 코트를 보여주는 위치를 수시로 변화시키면서 대결의 긴박감을 살렸다.
영상이 단순히 배경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인물의 심리를 표현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고, 추상적인 문양이 마치 뮤직비디오 영상처럼 음악에 맞춰 변하면서 음악의 정서와 의미를 감성적으로 전달해 주는 역할도 했다. 보통 아날로그적인 속성이 강한 공연에 영상이 과도하게 들어오면 이물감이 생기기 마련인데 뮤지컬 '데스노트'에는 그런 느낌이 없었다. 공간과 무대가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변하면서 작품은 마치 영화 속에서 뮤지컬을 공연하는 듯한 효과를 발휘했다. 공연은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6월 2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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