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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괴뢰집단이 운영한 유일한 수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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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수도 자그레브 남동쪽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국경 우나강과 사바강이 만나는 유역에 야세노바츠(Jasenovac)라는 주민 수 2,000명 남짓의 마을이 있다. 2차 대전 때 ‘야세노바츠 강제수용소’가 있던 곳이다. ‘나치 직영’이 아닌 파시스트 괴뢰집단이 독자적으로 세워 운영한 2차 대전 유일한 멸절 수용소로, 운영 주체는 극우 크로아티아 혁명운동 집단인 ‘우스타샤(Ustasha)'였고, 희생자는 유대인과 세르비아인, 로마니족(집시)과 비가톨릭 교도였다.
극우 파시즘과 크로아티아 민족주의, 가톨릭 근본주의자들이 1920년대 말 조직한 우스탸샤는 2차 대전 나치에 동조하며 괴뢰정부 ‘크로아티아독립국’을 수립, 1941년 8월 나치 멸절 수용소를 본뜬 야세노바츠 수용소를 만들었다.
야세노바츠 수용소는 규모는 상대적으로 작았지만 아우슈비츠 등 여느 나치 멸절수용소보다 잔혹한 학살극이 자행된 곳으로, 특히 당시 자그레브 대주교를 비롯한 가톨릭 신부 다수가 수용소 운영에 직간접적으로 간여한 것으로 악명 높다. 수용자는 총살이나 가스실 학살 등 ‘공식’적인 처형뿐 아니라 간수들의 내기 같은 상시적 오락거리로 다수가 희생됐다.
1945년 4월 폐쇄될 때까지 야세노바츠 수용소 희생자는 전후 크로아티아 정부 공식 발표로는 약 3만 명이지만 유대인 단체 등은 최소 10만 명이 넘는다고 주장한다. 미국 워싱턴D.C 홀로코스트박물관(USHMM)은 7만7,000~9만9,000명으로 추산하고 있고, 1960년대 조성된 야세노바츠 추모공원 명부에 기록된 희생자 숫자는 8만3,145명이다. 그중 여성은 2만3,474명이고 14세 미만 아동도 2만101명이다.
패전이 임박해지면서 우스타샤는 야만 행위를 은닉하기 위한 ‘청산 작업’, 즉 집단 학살·시체 소각 작업을 조직적으로 벌였다. 그 와중인 1945년 4월 22일 수용자 600여 명이 집단 탈출을 감행했고, 그중 60여 명이 목숨을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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