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통첩 거부한 마리우폴… "포기하면 서쪽도 위태"

입력
2022.04.18 18:59
수정
2022.04.18 22:00
17면
구독

우크라 총리 "항복 의사 없다" 맞서지만
"내주 러軍이 마리우폴 점령" 암울한 전망
돈바스 함락 후 키이우로 전선 옮길 수도
서부 르비우 미사일 5발…동서남북 포격
오스트리아 총리 "푸틴, 전쟁 승리 확신"

17일 함락 위기에 놓인 우크라이나 남동부 마리우폴에서 친러시아 반군이 장갑차를 타고 경계를 서고 있다. 마리우폴=로이터 연합뉴스

17일 함락 위기에 놓인 우크라이나 남동부 마리우폴에서 친러시아 반군이 장갑차를 타고 경계를 서고 있다. 마리우폴=로이터 연합뉴스

함락 위기에 처한 우크라이나 남동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이 러시아군의 최후통첩을 단칼에 거부했다. 동부 돈바스와 크림반도를 잇는 길목인 이곳을 빼앗길 경우, 수도 키이우를 비롯한 중서부 전선마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마리우폴 함락을 앞둔 러시아군은 동서남북으로 공세를 확대하며 우크라이나의 저항력을 분산시키는 한편, 긴장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18일(현지시간) AP통신 등 외신을 종합하면, 우크라이나군 2,500명은 11㎢ 규모의 마리우폴 최대 제철소인 ‘아조우스탈’에서 결사항전을 이어가고 있다. 러시아군이 전날 “오후 1시(한국시간 오후 7시)까지 무기를 내려놓지 않으면 파괴하겠다”고 경고했지만, 이들은 끝내 목숨을 건 저항을 택했다. 데니스 슈미갈 우크라이나 총리는 미국 ABC방송에 출연, “가능하다면 외교를 통해 전쟁을 끝내려는 준비가 돼 있지만 항복 의사는 없다”며 “도시(마리우폴)는 아직 함락되지 않았고, 우리 군대는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높은 결의와 달리 상황은 여의치 않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이날 미국 CBS방송 인터뷰에서 “광범위한 파괴로 마리우폴은 실질적으로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러시아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도시를 완전히 파괴하기로 결정한 것 같다”고 말했다. ‘완전한 함락’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암울한 전망도 나온다. 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다음 주쯤 러시아군이 마리우폴을 모두 점령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안팎의 비관적 관측에도 우크라이나가 마리우폴을 포기하지 않는 까닭은 이곳에 나라의 명운이 걸렸기 때문이다. 흑해 연안에 위치한 마리우폴은 동부 총공격의 ‘직전 단계’로 여겨진다. 러시아군은 이곳을 일단 장악한 뒤 친러 반군과 함께 돈바스에 화력을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만일 동부 지역마저 러시아 손에 넘어간다면 우크라이나의 다른 지역도 안심하지 못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미국 CNN방송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돈바스를 손에 넣을 경우 키이우를 점령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며 “(동부) 전투는 전쟁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역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를 장악한다면 다시 서쪽으로 밀어붙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북부 지역에서 퇴각한 러시아군이 동부 지역에 멈추지 않고, 다시 우크라이나 전체를 집어삼킬 야욕을 드러낼 수 있다는 얘기다.


18일 우크라이나 서부 르비우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다. 르비우 당국은 이날 러시아군이 미사일 5발을 쏘면서 6명이 숨지고 11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르비우=로이터 연합뉴스

18일 우크라이나 서부 르비우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다. 르비우 당국은 이날 러시아군이 미사일 5발을 쏘면서 6명이 숨지고 11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르비우=로이터 연합뉴스

실제 최근 러시아군의 공격 태세를 보면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다. 이날 폴란드 접경지역으로 비교적 안전지대였던 서부 르비우에 러시아군의 미사일 5발이 떨어졌다. 미사일이 군사기반 시설과 자동차 정비소를 강타하면서 어린이 한 명을 포함해 7명이 목숨을 잃고 11명이 부상당했다. 전날에는 제2 도시인 북동부 하르키우에서도 러시아의 다연장 로켓과 대포가 쏟아지면서 최소 5명이 숨졌고, 중부 드니프로, 남부 미콜라이우와 드니프로페트로프스크 등에서도 러시아군의 공격이 이어졌다. 최근 키이우에도 공습 사이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비탈리 클리치코 키이우 시장은 “키이우를 떠났던 시민들은 귀향을 자제하고 더 안전한 곳에 머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지난달 말 “동부 지역 공략에 집중하겠다”며 북부 전선을 떠난 러시아군이 13일 흑해함대 기함 모스크바호 격침 이후 전방위 보복 공격을 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지만, 언제든 우크라이나 전역으로 공격이 확산할 수 있다는 신호로도 풀이된다.
우크라이나 국방부 관계자는 영국 BBC방송에 “동부뿐 아니라 국가 전체가 여전히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증명한다”고 말했다.

포성이 전역에서 잇따르면서 휴전은 한 걸음 더 멀어졌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불통’ 역시 전쟁을 장기전으로 이끌고 있다. 11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푸틴 대통령을 직접 만난 카를 네하머 오스트리아 총리는 미 NBC방송에 “그는 이 전쟁이 러시아 연방의 안전 보장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전했다.

허경주 기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