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안보협력기구 “러, 우크라서 살해·고문·납치 자행…인도주의법 위반”

입력
2022.04.14 00:43
수정
2022.04.14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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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우폴 산부인과 공격, 전쟁범죄 가능성" 지적

12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외곽 도시 부차에서 나디야 할머니가 러시아군에 살해된 아들의 시신 옆에 망연자실한 채 앉아 있다. 부차=AP 뉴시스

12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외곽 도시 부차에서 나디야 할머니가 러시아군에 살해된 아들의 시신 옆에 망연자실한 채 앉아 있다. 부차=AP 뉴시스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는 전문가 조사 결과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국제 인도주의 법을 위반한 ‘명백한 패턴’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전쟁범죄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는 사건들도 언급됐다.

13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과 미국 CNN방송에 따르면 OSCE는 이날 발표한 보고서에서 “가장 기본적인 인권(생명의 권리, 고문 금지, 비인도적이고 모멸적인 처우 및 처벌 금지)이 침해당했다고 볼 수 있는 ‘믿을 만한 증거들’을 발견했다”며 “대부분 러시아의 실효적 통제 아래 있는 지역, 또는 러시아의 완전한 통제를 받는 단체에서 저질러졌다”고 지적했다. 마이클 카펜터 OSCE 주재 미국 대사는 “이 보고서는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군이 저지른 비인도주의적 행위의 목록을 기록하고 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평했다.

110페이지에 달하는 이 보고서는 표적 살해, 고문, 강제 실종에 대한 보고가 상세히 기록돼 있다. 진상 조사단이 입수한 여러 보고서와 사진 증거도 첨부됐다. 여기에는 러시아군이 군사용 비의료 차량에 적십자 엠블럼을 달았다는 의혹과, 군사 작전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국기ㆍ군대ㆍ경찰 상징물, 민간인 의복, OSCE 상징물 등을 이용했다는 주장도 포함됐다.

보고서는 러시아군에 붙잡혀 9일간 감금됐던 우크라이나 통역사의 사례도 자세하게 소개했다. 이 통역사는 지하 얼음 저장소에 갇혀서 소막대와 소총 개머리판 등으로 수차례 맞았고, 전기 고문도 당했다. 러시아군이 48시간 동안 음식을 주지 않아 굶주리기도 했다.

보고서는 “이러한 사례들은 러시아가 국제법을 위반하는 패턴을 보여주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동부 돈바스 지역에 있는) 자칭 도네츠크공화국과 루한스크공화국이라고 하는 러시아군 대리인들”도 가해자에 포함된다고 강조했다. 또 전쟁이 여성, 아동, 노인 등 취약 계층 인권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 전쟁 포로 처우 문제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평가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특정 사건들에 대해 ‘전쟁범죄’ 여부를 판단하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가 전쟁 중이라 증거 수집에 한계가 있었던 탓이다. 그러면서 “전쟁범죄에 대한 개인적 형사 책임을 가리기 위해 더 상세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단 우크라이나 남동부 마리우폴 산부인과 병원을 포격한 러시아군의 행위는 “명백한 인도주의법 위반이며 폭격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전쟁범죄’를 저질렀다”고 명시했다.

인도주의 법 위반 사례는 우크라이나군 측에서도 일부 확인됐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군 러시아군 포로의 다리에 총을 쏘는 장면을 담은 영상이 온라인에 올라오기도 했다. 그러나 OSCE는 “러시아의 법 위반은 규모나 성격 면에서 훨씬 더 크다”고 비판했다.

OSCE는 57개 나라를 회원으로 두고 있으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도 소속돼 있다. 이번 보고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2월 24일부터 4월 1일까지 상황을 다룬다. 4월 1일 이후 확인된 ‘부차 대학살’은 담기지 않았다. 평가 작업에는 유럽과 북미, 중앙아시아 출신 전문가 3명이 참여했다.

유엔 인권사무소(OHCHR)에 따르면 전쟁 발발 이후 지금까지 우크라이나에서 민간인 사상자는 4,4509명으로 집계됐다. 사망자는 1,892명, 부상자는 2,558명이었다. 그러나 교전 지역 상황은 파악하지 못해 실제 사상자 규모는 몇 배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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