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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퇴각한 뒤 온통 지뢰·불발탄… 우크라 미래까지 파괴하려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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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 1… 터진다!”
러시아군이 퇴각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인근 마을에 귀를 찢을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우크라이나군 지뢰 제거 부대가 불발탄들을 수거해 들판에 모아놓고 한꺼번에 폭발시킨 것이었다. 미콜라 오파나센코 중령은 “무게가 45kg가량인 불발탄 16개를 제거했고 오늘 안에 30개를 더 없애야 한다”고 11일(현지시간) 미국 CNN방송에 말했다. 이 부대가 최근 일주일간 제거한 포탄 무게만 2.5톤에 달한다.
우크라이나가 수복한 키이우 외곽 도시와 북부 도시들은 온통 ‘지뢰밭’이다. 러시아군은 철수하면서 도로와 주택가에 지뢰를 다량 설치하고, 불발탄과 포탄을 숱하게 남겨 뒀다. 우크라이나군의 진격을 가로막고, 철수 행렬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일부 사망자 시신에서도 부비트랩(건드리거나 들어올리면 폭발하도록 임시로 만든 장치)이 발견됐다. 철군 이후까지 인명 살상을 노린 악랄한 만행이었다.
키이우 인근 도시와 마을 곳곳엔 지뢰 경고 표지판이 세워졌다. 우크라이나 군당국은 땅을 샅샅이 수색하며 지뢰와 포탄, 기관총, 총알, 탄약 등을 수거하느라 사투를 벌이고 있다. 앞서 6일 우크라이나 국가비상국은 “전쟁이 격화하고 있어 향후 지뢰ㆍ폭발물 제거 작업은 수개월 이상 걸릴 것”이라며 “조사해야 할 면적만 3,000㎢가 넘는다”고 말했다. 서울 면적의 무려 5배에 이른다.
지뢰 제거 작업 도중 대량살상무기인 집속탄 파편으로 보이는 잔해물도 다수 발견됐다. 오파나센코 중령은 튜브 모양 몸통에 오징어 다리 같은 부착물이 달린 포탄을 CNN에 보여주며 “러시아 전투기가 떨어뜨린 집속탄 일부”라고 설명했다. 포탄 한 개에 수백 개 소형 폭탄이 들어있는 집속탄은 군인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는 무차별 살상무기로, 국제법으로 사용이 금지돼 있다. 러시아군은 전쟁 초기부터 집속탄을 사용했다는 의혹을 받아 왔다. 최근 유엔 인권감시단도 “러시아군이 인구 밀집 지역에 집속탄을 최소 24회 이상 터뜨렸다는 믿을 만한 주장을 입수했다”고 밝혔다.
러시아군이 여전히 맹공을 퍼붓고 있는 북동부 제2도시 하르키우에도 11일 ‘지뢰 경보’가 내려졌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이날 자정을 갓 넘긴 새벽 하르키우에 지뢰 폭탄을 무차별 투하했다. 우크라이나 국가비상국 지뢰 제거 총책임자인 니콜라이 오우차루크 중령은 “이 장치는 자폭 타이머를 이용해 폭발하는 플라스틱 PTM-1M 지뢰로, 과거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광범위하게 사용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하르키우 동쪽 지역은 폭발물 제거를 위해 비상 경계선이 설정됐고 주민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됐다.
지뢰와 각종 폭발물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우크라이나 주민들의 목숨을 위협하고 재건을 가로막는다. 제거에 천문학적 비용과 시간이 투입된다. 영국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2014년 우크라이나 돈바스 내전 이후 이 지역 지뢰 제거 비용으로 우크라이나 정부가 책정한 금액은 6억5,000만 유로(약 8,740억 원)에 이른다. 2003년 이라크 전쟁 같은 규모라면 10년에 걸쳐 10억 달러(약 1조2,400억 원)가 소요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금 우크라이나 땅은 전 세계에서 지뢰로 가장 오염된 곳 중 하나”라며 “러시아군은 철수하면서 가급적 많은 사람을 죽이고 불구로 만들기 위해 고의로 폭발물을 설치했다”고 분노했다. 또 “상부 명령에 따른 행위가 분명하다”며 “이러한 상황도 ‘전쟁범죄’로 간주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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