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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대 오른 유엔…젤렌스키 “유엔 문 닫을 준비됐나” 직격탄

입력
2022.04.06 17:45
수정
2022.04.06 18:46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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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렌스키, 유엔 안보리 연설...학살 영상 재생
"그들은 오직 재미로 어린이와 일가족 죽였다"
러시아 거부권 행사로 유엔 사실상 유명무실
"서방과 러·중으로 갈린 신냉전에 기능 줄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5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화상연설을 하고 있다. 뉴욕=AFP 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5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화상연설을 하고 있다. 뉴욕=AFP 연합뉴스


“유엔은 문 닫을 준비가 됐습니까. 더 이상 국제법은 통용되지 않습니까. 당신들의 답이 ‘아니다’라면 지금 당장 행동하십시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화상연설 중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단호한 목소리가 5일(현지시간)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회의장에 울려 퍼졌다. 절박한 호소에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유엔 안보리 화상연설에서 국제사회를 대표하는 유엔이 러시아군의 민간인 학살 정황을 목도하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데 대해 강하게 질책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연설 도중 우크라이나 부차와 이르핀, 마리우폴 등에서 러시아군이 저지른 것으로 추정되는 민간인 희생 현장 관련 영상을 내보냈다. 잔혹하게 살해당한 민간인 시신이 영상에 등장하자 수백 명이 있던 회의장은 순식간에 침묵이 흘렀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군은 오직 재미로 어린이와 일가족을 죽이고 시신을 불태웠다”며 “그들은 자동차를 타고 도망치던 민간인을 탱크로 짓밟고 자녀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여성들을 강간하고 살해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유엔 헌장 1조도 지키지 못하는 유엔의 존재 의미는 무엇인가”라고 반문하며 “안보리는 있지만 안보리가 보장하는 안보는 어디에도 없다”고 무기력한 유엔의 역할을 강하게 지적했다. 유엔 헌장 1조에는 ‘국제 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 이를 위협하고 침략하는 행위를 진압하고 국제 분쟁을 조정하고 해결한다’는 유엔의 설립 목적이 명시돼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부터 유엔의 적극적 개입이 요구돼왔지만 유엔은 유명무실이다. 유엔 안보리는 국제법상 유엔 회원국에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유일한 집단이다. 하지만 제재 결의 등을 결정하는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인 러시아의 반대로 '러시아 규탄 결의안'조차 현재까지 통과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날 열린 안보리 회의에서도 바실리 네벤쟈 주유엔 러시아 대사는 “러시아군이 철수한 직후엔 아무 시신도 없었다”며 민간인 학살을 전면 부인했다. 장쥔 주유엔 중국대사도 “성급하게 비난하는 것을 자제하고, 사건의 전후 상황과 원인 검증부터 해야 한다”며 러시아편에 섰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는 안보리 거부권을 ‘살인의 권리’로 사용하고 있다”며 러시아의 안보리 상임이사국 퇴출을 요구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유엔을 대체해 러시아군의 전쟁범죄를 단죄하기 위해선 제2차 세계대전 뒤 나치를 처벌하기 위해 구성된 독일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소 같은 별도의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유엔 무용론’도 한층 거세질 전망이다. 리처드 고완 국제위기그룹(ICG) 유엔전문가는 최근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 기고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냉전 종식 이후 유엔에 대한 가장 가혹한 시험대가 될 것”이라며 “특히 서방과 러시아ㆍ중국으로 갈린 신냉전 체제에서 유엔 안보리의 기능은 더욱 줄어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케말 더비스 브루킹스연구소 부소장도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거부권이 세계 평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거부권 행사를 제한하는 방법을 모색하면서 유엔 운영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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