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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러시아산 가스 끊어야”… 우크라 학살에 국제적 압박, 시험대 오른 독일

입력
2022.04.05 16:5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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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러시아 학살 행위에 '에너지 추가 제재' 검토
가스 의존도 큰 獨 딜레마… 연정 안에서도 논쟁
NYT "석탄 금수 유력… 러시아 경제 타격 없을 듯"

4일 우크라이나 키이우 외곽 도시 부차에서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파괴된 러시아 장갑차 등을 살피고 있다. 부차=AP 뉴시스

4일 우크라이나 키이우 외곽 도시 부차에서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파괴된 러시아 장갑차 등을 살피고 있다. 부차=AP 뉴시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외곽 도시 부차 등에서 민간인을 학살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독일이 대응 조치로 러시아 에너지 수입 금지를 단행해야 한다는 국제적 압박이 커지고 있다.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가 55%에 달하는 독일은 그동안 유럽연합(EU)의 러시아 에너지 금수 조치 확대에 미온적이었다. 그러나 끔찍한 학살을 목도한 이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전쟁 자금줄인 에너지 수출을 방관하긴 어려운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

4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EU는 6일 회의를 열어 러시아 에너지 규제와 러시아 선박 EU 입항 금지 등 추가 제재 방안을 논의한다. 이달부터 러시아산 가스 수입을 전면 중단한 에스토니아ㆍ라트비아ㆍ리투아니아 등 발트 3국은 “우리가 할 수 있으면, 다른 나라도 할 수 있다”며 EU 회원국에 동참을 촉구했다. 마테우스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EU 회의록을 읽어 보면 독일이 결정적 제재 추진에 가장 큰 걸림돌이란 사실을 알 것”이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독일은 정치적 명분과 경제적 이익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졌다. 올라프 숄츠 총리는 “동맹국과 대(對)러시아 제재 강화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으나 제재 대상에 가스가 포함되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올리버 크리셔 경제ㆍ기후보호부 대변인도 “액화천연가스(LNG) 등 수입 대각화, 비(非)구매, 에너지 절약 등 수입 금지에 준하는 노력을 할 것”이라며 즉각적인 금수 조치에는 선을 그었다.

연립정부 안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크리스티아네 람브레히트 국방장관은 “EU가 상응하는 조치로 러시아산 가스 수입 전면 금지를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크리스티안 린드너 재무장관은 “러시아와의 경제적 유대를 가급적 빨리 끝내야 한다”면서도 “가스는 단기간에 대체할 수 없고 러시아보다 우리에게 더 큰 피해를 끼칠 것”이라며 반대했다.

다만 독일 국민 여론은 제재 강화로 다소 기운 분위기다. 최근 각종 여론 조사에선 55~77%가 가정 경제에 영향을 끼치더라도 러시아산 가스 수입 중단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산업계에선 생산 시간 감축을 논의 중이고, 시민들은 난방 에너지 절약, 저속 주행 등을 실천하고 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3일 베를린에서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민간인 학살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베를린=AP 뉴시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3일 베를린에서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민간인 학살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베를린=AP 뉴시스

그러나 이번에도 EU 제재 대상 목록에 가스는 포함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러시아산 석유와 석탄에 대한 새로운 제재는 찬성하지만 EU에 가스 수입 금지를 요청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U 관리들도 “검토 중인 제재 안에는 러시아 석탄 수입 금지가 포함돼 있지만 석유와 가스는 제외될 것 같다”고 전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석탄은 주로 민간기업들이 생산해 국영기업이 독점한 가스ㆍ석유 규제만큼 푸틴 대통령에게 타격을 주진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그동안 무수한 제재 폭탄에도 러시아 경제는 무너지지 않았다. 폭락했던 루블화 가치는 4일 전쟁 전 수준까지 반등했고, 러시아 증시 모엑스 지수도 안정세로 돌아섰다. 최근 한 연구는 러시아가 올해 말까지 가스ㆍ석유 수출로 얻는 수익이 지난해보다 3분의 1 증가한 최대 3,200억 달러(약 389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가스관을 틀어막지 않으면, 전쟁을 끝낼 수 없다는 얘기다.

드미르토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러시아산 가스ㆍ석유 차단에 반대하는 모든 나라는 부차에 먼저 와 보라”며 “금수 조치는 강간, 고문, 학살 희생자와 유가족, 그리고 우크라이나 국민 전체의 요구”라고 강조했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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