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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자살극의 성공과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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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극이라는 목숨의 극단적 허구화는 대개 불리한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도박적 동기나 과거와 단절하고 새 삶을 살고자 하는 욕망으로 시도된다. 전자의 경우 대개는 '실패한 자살(자살 기도)'의 수법이, 후자의 경우 잠적-신분 세탁의 방식이 주로 동원된다.
실패한 자살극은 대가도 크다. 그 자체로 거짓 삶의 부인할 수 없는 자백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자살극은 성공하기 어렵다. 자살극이 성공했다는 것은 전자의 경우라면 연극적 행위가 진실로 받아들여졌다는 의미여서 '극(劇)'이 아닌 게 되고, 후자라면 행위자가 법적 사망선고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자살극의 성공이란 그 자체로 형용모순이며, 성공했다면 영원한 비밀로 남아야 한다.
영국 정치인 겸 사업가 존 스톤하우스(John Stonehouse, 1925~1988)가 택한 건 후자의 방식이었다. 노동당 정치인으로 1960년대 해럴드 윌슨 정부의 체신청장과 통신부 장관 등을 역임한 그는 1974년 11월, 하원의원 신분으로 미국 마이애미 해안에 옷과 타월 등을 담겨 둔 채 자취를 감췄다. 당국은 그가 수영 도중 익사했거나 상어에게 희생된 것으로 추정했다.
그는 한 달여 뒤 호주 멜버른 경찰에 의해 체포되면서 생존 사실이 발각됐다. 위조 여권으로 내연관계였던 비서와 함께 도피, 미리 빼돌린 가명 은행 예금을 인출하려다 덜미를 잡힌 거였다. 당시 그는 여러 사업에 실패해 도산 위기에 몰려 있었고, 분식회계까지 들통나 조사를 받을 참이었다. 하원의원 면책 특권을 이용해 본국 송환과 재판에 불응하던 그는 1976년 4월 7일에야 의원직을 사임했고, 사기 위조 등 21개 혐의로 7년형을 선고받았다. 1979년 대처 정부는 의혹으로 남았던 그의 체코슬로바키아 스파이 행위까지 공식 인정했다. 다만 물증이 부족해 기소는 면했다.
1980년 가석방된 그는 자기 이야기를 방송사 등에 팔고 자서전과 4편의 소설을 썼다. 그는 자살극에는 실패했지만, 서사를 상품화하는 데는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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