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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가 튼 변혁의 물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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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한 노점상의 분신자살로 시작된 튀니지 반정부 시위가 '재스민 혁명'으로 25년 만에 정권을 엎었고, 그 불길이 이집트 예멘 리비아 독재권력까지 잇달아 허물고 이란 요르단 등 아랍권 전역으로 확산됐다. 그 일련의 전개를 세계는 '아랍의 봄'이라 불렀고, 'SNS혁명'이라고도 했다. 정치·종교·군사적 권위주의와 대안 정치 억압, 언론 등 자유 인권 탄압으로 사실상 막혀 있던 시민사회의 언로(言路)가 페이스북 등 SNS로 열렸기 때문이었다. 30년 독재에 이어 권력 부자 승계를 꾀하던 이집트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을 극적으로 붕괴시킨 바탕에도 SNS가 있었다.
1952년 쿠데타로 친영 왕정을 무너뜨린 나세르 이래 이집트 정권의 수명은 곧 권력자의 수명이었다. 1970년 나세르가 자연사하면서 부통령이던 안와르 알 사다트가 권력을 승계했고, 1981년 사다트 암살로 부통령 무바라크가 비상계엄령하에 대통령이 됐다. 무바라크 정권은 2011년 하야 직전까지 계엄 통치를 지속하며 부패와 독재의 견고한 구조를 구축했다. 2004년 한 조사에 따르면 이집트 인구의 약 3분의 1인 15~29세 청년 67%는 유권자 등록조차 하지 않았다.
2005년 대선을 앞두고 미국 등 국제사회는 다당제 선거 등 이집트 정치민주화를 종용했다. 그 덕에 선거 국면 '이견'의 조직화와 집회 자유의 언로가 제한적으로나마 열렸고, 좌파 및 무슬림형제단 등 야권이 연대했다. 네 차례 내리 93~98% 지지율로 정권을 연장한 무바라크는 그 선거에서 처음 80%대 지지율로 연임했다.
당시 이집트 시민 인터넷 이용률은 약 9분의 1이었고, 그중 약 9%(80만 명)가 페이스북 이용자였다. 그들 중 일부가 2008년 4월 6일 이집트 나일델타 지역 섬유노동자 파업을 페이스북을 통해 지원하며 '4·6 청년운동'이란 조직을 형성했고, 탄압 속에 활동을 이어가며 2011년 이집트의 봄을 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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