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부인 옷값 논란의 ‘내로남불’ 교훈

입력
2022.04.01 18:00
22면

美도 영부인 옷값은 정치 공방 단골 소재
‘사비 구입’ 원칙이지만, 다양한 편법 존재
차기 정권에 ‘내로남불’의 반면교사 돼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 게티이미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 게티이미지

대통령 영부인 김정숙 여사의 옷값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청와대는 전액 사비로 구매했다는 입장이지만, 언론과 비판자들은 ‘영수증 발행 없이 현금 결제가 이뤄졌다’는 증언 등을 내세우며 여전히 의혹 제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흥미로운 건 미국에서도 백악관 안주인, 즉 대통령 영부인의 옷값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소재라는 사실이다. 영부인이 조금만 튀거나 비싸 보이는 의상을 입고 나오면 반대 세력의 공격 거리가 된다. 2014년 6월 2일 AP통신이 ‘영부인 옷값은 누가 부담하나’라는 기사를 올린 것도 그 때문이다. 당시 퍼스트레이디 미셸 오바마의 화려한 의상이 주목을 받았는데, 공화당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백악관 예산, 즉 미국 시민의 혈세가 사용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해당 기사는 역대 미국 영부인의 옷값 스캔들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기사에 따르면 16대 링컨 대통령의 부인(메리 토드 링컨)은 비싼 옷값을 감당하기 힘들어 백악관에서 거름을 만들어 파는 것까지 고민했다. 35대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 재클린 케네디는 올레그 카시니의 의상을 사랑했는데, 며느리의 옷 사치가 아들에게 부담이 될 것을 우려한 시아버지 조셉 케네디가 사재를 털어 막대한 비용을 부담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던 낸시 레이건은 명품 패션 브랜드에서 옷을 빌려야 했는데, 가끔 제때 돌려주지 않아 문제가 되기도 했다.

AP통신은 ‘옷 구입에는 세금이 쓰이지 않았고, 모든 옷은 미셸이 사비로 구입했다’는 백악관 해명을 액면 그대로 소개하면서도, 미심쩍은 구석이 많다는 기조를 유지했다. 백악관에서 영부인 옷값이 예산에 편성된 적이 없다는 ‘팩트’를 확인하면서도, 대통령 부인이라는 특수한 신분을 이용한 다양한 편법은 존재한다고 전했다. 예컨대 사비로 옷값을 결제했다고는 하지만, 미셸이 입은 옷 가운데 상당수는 내심 반대급부를 원하는 디자이너로부터 무료로 선물을 받거나, 돈을 냈더라도 파격적 할인을 받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AP통신은 “오바마 백악관은 ‘무료로 선물받은 고가의 옷들은 모두 국가 수장고(The National Archives)에 맡겨졌다'고 밝혔지만, 어떤 옷이 보관되어 있는지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 여사 옷과 액세서리 논란의 진실이 뭔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다. 영부인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는 건지, 아니면 미셸 수준의 편법이 개입됐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청와대 해명이 맞더라도, 문재인 정권의 실패 이유와 차기 정권의 성공 비결을 담은 중요한 사례다.

1987년 이후 정권 교체로 집권한 대통령이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노태우→김영삼, 김대중→노무현, 이명박→박근혜 등으로 이어졌다. 그런 의미에서 문 대통령은 실패한 대통령이다. 문 정권의 실패는 5년 내내 이어진 ‘내로남불’ 때문이다. 현 집권세력은 5년 전 그들이 내세운 잣대로 평가받더라도, 전 정권보다 결코 후한 점수를 받기 어렵다. 남을 욕하면서 스스로 돌아보지 못하고 패거리 수준의 이권만 챙긴 오만함으로 민심을 잃었다. 이제 차기 정권이 적폐 수사에 나서지 않을까 두려워하게 됐다.

윤석열 정권에 이 사태는 반면교사다. 국민 지지를 얻으려면, 나를 돋보일 욕심에 남의 잘못을 무리하게 캐지 말라는 걸 알려준다. 기업 경영이나 국정 운영에서 전임자를 깎아내리는 건 쉽다. 그러나 문 정권이 보여줬듯, 전임자를 욕한 후임자가 큰 성과를 낸 사례는 드물다. 훈수 잘 하는 사람이 바둑판에 앉으면 수가 생각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통합의 정치를 주문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조철환 에디터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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