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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물살 탄 휴전협상에 평화 '청신호'… 섣부른 희망 경계 목소리도

입력
2022.03.30 01:08
수정
2022.03.30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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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이스탄불서 4시간 걸친 5차 회담
러 "키이우·체르니히우 군사활동 줄여"
우크라 '새로운 안보 보장 시스템' 제안
대화 급물살에 전쟁 종식 기대감도 커져
美 "러시아 회담 진지하다는 신호 못 봐"

29일 터키 이스탄불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5차 휴전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이스탄불=로이터 연합뉴스

29일 터키 이스탄불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5차 휴전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이스탄불=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휴전협상에 청신호가 켜졌다. 5차 회담에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일부 지역에서 군사활동을 대폭 줄이기로 했고, 우크라이나는 중립국 지위를 채택하는 대신 새로운 안보보장 체제를 보장해달라고 제안했다. 양국 정상이 조만간 만날 가능성까지 언급됐다. 꽉 막혔던 양측의 대화가 급물살을 타면서 한 달 넘게 이어진 전쟁에 돌파구가 마련될 거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29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 외신을 종합하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터키 이스탄불에서 4시간의 마라톤 협상을 벌였다. 양측이 대면 논의에 나선 것은 지난 14일 이후 보름만이다. 알렉산드르 포민 러시아 국방차관은 협상이 끝난 뒤 “키이우와 체르니히우에서 군사활동을 급격하게(drastically) 줄이겠다”고 밝혔다. “상호 신뢰를 높이고 합의 및 서명이라는 궁극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한 결정”이라고도 덧붙였다. 실제 미국 CNN방송은 이날 발표 직후 “러시아군 대대전술그룹을 포함한 일부 병력이 키이우 주변에서 철수를 시작했다”고 전했다. 러시아 측 협상 단장인 블라디미르 메딘스키 대통령 보좌관은 회담 뒤 별도 기자회견에서 “협상이 건설적으로 진행됐다”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새로운 안보 보장 시스템’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 측 대표단으로 참여한 미하일로 포돌랴크 대통령실 보좌관은 “안보가 보장된다면 중립국 지위를 채택하는 데 동의하겠다”며 “이 경우 우크라이나에 외국 군사 기지를 유치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의 중립국화와, 외국 군사기지가 없는 ‘비무장 국가’로의 전환은 러시아의 핵심 요구 사안이었는데, 받아들일 수 있다고 언급한 셈이다.

우크라이나 측은 ‘새 시스템’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하지 않았다. 다만 협상 단장을 맡은 다비드 하라하미야 집권당(국민의 종) 대표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조약 5조처럼 법적으로 우크라이나를 보호할 의무가 있는 체제를 바란다”고 밝힌 점을 미뤄볼 때 집단 방위를 요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해당 조약은 한 회원국이 공격을 받으면 나토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보고 다른 회원국이 공동 방어한다는 개념이다. 나토 가입은 포기했지만 이에 준하는 안보 조치를 약속해달라는 얘기다. 우크라이나는 안보 보장국으로 이스라엘과 폴란드, 캐나다, 터키 등을 언급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EU) 가입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논의 테이블에 올랐다.

대신 2014년 러시아가 강제 병합한 크림반도 관련 문제는 우크라이나가 한 발 물러섰다는 평가다. 우크라이나는 크림반도를 군사력을 이용해 재탈환하지 않고, 향후 15년간 러시아와 이 지역 지위를 협의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28일 우크라이나 남부 미콜라이우에서 오데사행 피란 버스에 오른 시민이 남아있는 가족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다. 미콜라이우=AP 연합뉴스

28일 우크라이나 남부 미콜라이우에서 오데사행 피란 버스에 오른 시민이 남아있는 가족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다. 미콜라이우=AP 연합뉴스

양측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정상회담 성사 가능성까지 꺼내 들었다. 메딘스키 보좌관은 “두 대통령이 직접 회동할 수 있다고 보고 이를 위한 시간표 작성에 속도를 내기로 했다고”고 말했다. 회담은 양국간 조약이 준비되는 대로 가능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불과 사흘 전까지만 해도 “만남은 오히려 역효과를 낼 것”이라며 회담 가능성을 일축했던 점을 감안하면 진전된 발언이다.

승자는 없고 피해만 커지던 상황에서 양측의 대화가 급진전을 보이자 평화 기대감은 확산하고 있다.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는 “회담이 건설적이라는 발언이 이어지면서 전쟁 종식을 향한 진전이 있을 수 있다는 희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주요국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이날 양측의 성명이 나온 직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등과 전화 통화에 나섰다.

다만 섣부른 희망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당장 러시아측은 “키이우 인근 철군 조치가 휴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중동 순방 중인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역시 “러시아가 회담에 진지하다는 신호를 보지 못했다”며 회의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는 “러시아는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 사이에 차이가 있으며, 미국은 후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가 전향적인 평화 움직임을 보이기 전까지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겠다는 의미다.

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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