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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독극물 테러?… 우크라 협상 나선 아브라모비치 중독 의심 증세

입력
2022.03.29 07:36
수정
2022.03.29 18:07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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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담 후 몇 시간 동안 시력 손상 등 겪어
종전 원치않는 러시아 강경파 소행 의심
"신경안정제 유기인산염 가능성" 추측도
美, "독극물 아닌 환경적 이유 때문" 일축
우크라 외무장관 "회담서 먹지도 마시지도 말라"

러시아 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 AFP 연합뉴스

러시아 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 AFP 연합뉴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 비공식 평화 협상에 나선 러시아 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55)가 심각한 독극물 중독 의심 증세를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이지만, 피부가 벗겨지거나 몇 시간 동안 눈이 보이지 않는 아찔한 상황이 벌어졌다.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는데, 일각에서는 협상을 방해하려는 러시아 강경파의 극단적인 경고라는 주장도 나온다. 다만 미국 등은 ‘환경적 이유 때문’이라며 의혹에 선을 긋고 있어 진실은 미궁에 빠지는 분위기다.

28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이달 초 아브라모비치와 두 명의 우크라이나 고위 관계자가 독극물 중독으로 의심되는 증세를 보였다. 이들은 3일 키이우에서 열린 회담에 참석한 뒤 돌연 충혈과 고통을 동반한 눈물 지속, 얼굴과 손 피부 벗겨짐 등 증상을 겪었다. 특히 아브라모비치는 당시 몇 시간 동안 시력을 잃었고 음식 섭취에도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즉시 터키 이스탄불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한 주 뒤에는 상태가 크게 호전됐고 생명엔 지장이 없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아브라모비치는 당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도 만났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은 아무 증상을 겪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브라모비치가 참여한 협상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진행하는 공식 휴전 협상과는 별도로 진행 중이다.

사건은 베일에 싸였다. 서방 전문가들이 조사에 뛰어들었지만, 해당 증상이 생화학 무기나 전자기 방사선 공격 탓인지, 아니면 섭취한 음식물에 따른 것인지 결론내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럽 탐사전문매체 벨링캣은 이들이 중독 의심 증상을 보이기 전 물과 초콜릿만을 섭취했다고 설명했지만, 사건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는지는 밝혀내지 못했다.

다만 안팎에서는 러시아 강경파 소행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종전을 원치 않는 이들이 대화를 방해하기 위해 독극물 공격을 감행했다는 얘기다. 게다가 러시아는 수십 년간 반체제 인사나 정적을 제거할 때 독극물을 사용해온 것으로 악명 높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적으로 꼽히는 알렉세이 나발니가 대표적이다. 그는 러시아 모스크바행 여객기 안에서 갑자기 중독 증상을 보이며 쓰러졌는데, 몸에서 소련 시절 개발된 신경작용제 노비촉이 검출됐다.

이번에도 유사 독극물이 사용됐다는 주장도 나온다. 영국군에서 생화학ㆍ핵부대를 이끌었던 화학무기 전문가 해미시 드 브레튼고든은 일간 텔레그래프에 “사건에서 러시아의 냄새가 난다”며 “증상을 볼 때 신경작용제로 쓰이는 유기인산염처럼 보인다”고 언급했다. 일단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협상단 위협용’으로 보고있다. 독성 물질이 목숨을 노릴 정도의 양은 아니라는 게 이유다.

이에 반해 미국과 우크라이나 당국은 아브라모비치와 협상단의 독성 물질 중독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미국 정부의 한 관리는 로이터통신에 “중독이 아닌 환경적 이유 때문임을 시사하는 첩보가 있다”고 전했다. 중독 당사자 중 한 명으로 알려진 우크라이나 루스템 우메로우 국회의원 역시 “미확인 정보를 신뢰하지 말아 달라”며 의혹을 일축했다. 그러나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이를 ‘선정적인 뉴스’라면서도 이날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리는 평화회담에 앞서 “협상에 참석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먹고 마시지 말 것을 권한다”고 밝혔다.

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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